정부가 주식시장 ‘밸류 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기업 이사들에게 주주의 이익 보호 의무를 부여하기 위한 상법 개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소액주주의 이해에 어긋나는 이사회의 결정들로 인해 한국 증시가 선진국에 비해 저평가됐다는 주식 투자자들의 요구를 법에 반영하겠다는 발상이다. 문제는 배임죄를 형법으로 규정해 엄격히 처벌하는 한국 특유의 상황에서 이런 입법이 기업들의 의사 결정을 위축시켜 정상적 경영을 방해할 것이란 점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어제 “상법상 이사의 충실 의무를 ‘회사 및 주주의 이익 보호’로 확대하는 방안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이런 논의는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이 ‘투자자 이익을 보호할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주문한 뒤 본격화했다. 최상목 부총리 역시 “법무부, 금융위원회와 의견 수렴에 나서겠다”고 거들었다. 소액주주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는 기업 이사회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란 생각이 이런 논의의 배경에 깔려 있다.
대주주와 소액주주, 장기·단기 투자자의 이해가 상충하는 상황에서 이사회가 모든 주주의 이익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리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델라웨어 등 미국 일부 주를 제외하고, 이런 내용을 법제화한 선진국이 없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대다수 선진국은 이사들이 ‘회사’의 이익에 충실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 대법원 역시 회사 이익과 주주 이익을 엄격히 구분하는 판결을 내려왔다. 게다가 한국은 선진국 중 드물게 배임죄를 민사가 아닌 형사 범죄로 다룰 뿐 아니라 상법상 손해배상 책임 등으로 중복해 처벌한다. 합리적 경영 판단을 했는데 회사가 불가피하게 손해를 봤을 때 책임을 면해주는 안전장치도 전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