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 안나면 투자금 반환” 약속
로펌 명의 지급보증서 꾸며 배포
변호사 이름-사진 도용 사기극도
“개인적 투자 권유는 전부 가짜”
대기업에 다니는 50대 김중섭(가명) 씨는 최근 고수익 투자처를 소개한다는 텔레그램 투자 리딩방에 초대됐다. 비상장 주식을 싸게 살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다른 회원들이 인증한 투자 계약서에는 법무법인(로펌)의 이름뿐 아니라 워터마크(불법복제 방지 무늬)까지 새겨져 있었다. 검색해 보니 실존하는 로펌이었다. 진짜 계약서라고 철석같이 믿은 김 씨는 기대에 부풀어 노후자금 3200만 원을 송금했다. 하지만 투자를 권유한 업체는 돌연 잠적했다. 당황한 김 씨가 계약서에 적힌 로펌에 연락해 보니 “해당 투자와 전혀 관련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김 씨는 그제야 ‘속았다’ 싶었지만 이미 대화방은 사라진 후였다. 김 씨는 “실제 로펌 이름이 적혀 있는 등 감쪽같아 사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 로펌 도용한 ‘간 큰’ 투자 사기 일당
11일 서울 강남경찰서는 로펌의 이름을 도용해 투자자로부터 돈을 받은 뒤 잠적한 투자업체를 변호사법 위반 등 혐의로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당 법무법인이 김 씨 등 사기 피해자로부터 연락을 받고 사기업체를 지난달 24일 고발한 데 따른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로펌까지 도용하는 투자 리딩방 사기는 흔치 않아서 엄정히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 “채팅방 투자 권유는 전부 가짜라고 봐야”
로펌 공식 홈페이지에서 바로 프로필을 확인할 수 있는 변호사의 이름을 도용하는 건 ‘설마 이것도 가짜겠냐’는 피해자의 심리적 허점을 노린 수법이면서, 그만큼 사기범들이 ‘잡히지 않을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들이 투자자 모집에 주로 악용하는 보안 메신저 텔레그램은 본사가 해외에 있고 수사기관의 요청에도 피의자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추적하기 쉽지 않다. 어렵사리 일부 가담자를 특정해도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특성 탓에 피해액을 돌려받기는 더 어렵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경찰에 신고된 투자 리딩방 피해액은 2970억 원에 달한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