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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리스크’ 삼성重, 5조원 규모 선박 17척 계약 파기 당해

입력 | 2024-06-14 03:00:00

러 조선소, 선수금+지연이자 요구
삼성重, 국제소송 제기해 대응 방침
러 조선소와 블록-기자재 공급 계약
우크라 침공 對러 제재에 중단돼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삼성중공업 제공



2020년, 2021년 러시아로부터 선박 17척을 수주한 삼성중공업이 최근 계약 해지를 통보받았다. 동시에 이미 받은 선수금 8억 달러(약 1조1000억 원)와 이자까지 돌려달라는 요구도 받았다. 국제사회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제재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삼성중공업도 선박 건조를 할 수 없게 되자 결국 계약 파기까지 이른 것이다. 삼성중공업은 러시아 측의 일방적인 계약 파기 등에 대해 국제 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다.

1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공시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은 러시아 즈베즈다 조선소로부터 42억 달러(약 5조7700억 원) 규모의 계약 해지를 통보받았다. 즈베즈다 조선소는 이미 납입한 선수금 8억 달러와 지연 이자 지급도 요구했다.

삼성중공업은 즈베즈다 조선소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15척과 북해용 셔틀탱커 7척 등 총 22척의 건조 계약을 맺었다. 이 가운데 2019년 계약한 5척은 대금을 받고 건조해 인도를 마쳤다.

문제는 나머지 17척에서 발생했다. 삼성중공업은 2020년 11월과 2021년 10월 나머지 17척에 대한 선박 블록 및 기자재 계약을 체결했다. 선박 블록과 기자재를 즈베즈다 조선소로 보내면 현지 조선소에서 조립해 건조하는 방식이다. 즈베즈다 조선소는 42억 달러 계약 가운데 8억 달러 선수금을 냈다.

하지만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에 대러 제재 및 수출 통제 조치 동참을 요구했다. 삼성중공업도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근거로 들며 선박 블록과 기자재 공급 등 작업을 중단했다. 이후 약 2년 동안 즈베즈다 조선소와 향후 계약 이행 방안 등에 대한 논의를 이어왔다.

그러나 올해 2월 미국 정부가 즈베즈다 조선소를 특별제재대상(SDN)으로 지정하며 거래가 완전 봉쇄됐다. 양측은 계약 유지 여부에 대한 상호 협상을 진행했다. 그러나 11일 즈베즈다 조선소는 일방적으로 삼성중공업의 계약 불이행을 주장하며 선수금과 지연 이자에 대한 반환을 통보한 것이다. 미국의 SDN 지정으로 향후에도 사실상 사업 진행이 어려운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삼성중공업은 싱가포르 중재법원에 제소해 즈베즈다 조선소의 계약 해지에 대한 위법성과 반환 범위를 두고 다투겠다는 입장이다. 삼성중공업은 공시를 통해 “현재 SDN에 지정된 선주사와 어떠한 자금 거래도 불가한 상황”이라며 “선주사의 계약해지 통보는 부적법하므로 법원에 제소하는 한편 협상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계약 해지로 인한 피해 여부에 대해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2년 전부터 사업이 사실상 중단됐던 상황이라 예상이 가능했고 다양한 방안도 마련해 오던 상황”이라며 “전쟁이 발발한 시점에는 자재를 구매하거나 건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국내 거제조선소 독(dock·선박 건조장)에서 배를 건조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선박들의 건조 일정에도 차질이 없다고 덧붙였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