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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발찌 차고도 성범죄…피해자 “비명지르고 시간끌었지만”

입력 | 2024-06-14 12:04:00

1월1일 모르는 여성 따라가 성폭행
피해자 "전자발찌 차고 있는지 몰랐다"
"추적 빨랐다면 당하지 않았을 것" 억울함 토로



ⓒ뉴시스


“어떻게든 피해 보려고 3시간을 버텼어요. 밖에서 사이렌 소리만 들렸어도 그놈은 도망갔을 거에요.”

모두가 설렘을 가득 안고 있었을 새해 첫날 아침. 피해자 A씨의 악몽이 시작됐다.

누군가 밤샘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던 A씨의 뒤를 쫓았다. 과거 청소년 대상 성범죄 등으로 세 차례 실형을 받았고, 2016년 주거침입강간죄로 징역 8년을 선고받아 작년 8월에 출소한 전과자 김모(42)씨였다.

지난 1월1일, 일면식도 없던 피해자를 발견하고 집까지 따라온 김씨는 피해자의 도어락이 잠기기 직전, 문을 열고 침입했다. 생명에 위협을 느낀 피해자는 김씨와 대화를 시도하며 시간을 끌었다. 범행까지 걸린 시간은 3시간 남짓. 당시 김씨는 전자발찌를 차고 있었다.

뉴시스는 지난 13일 서울동부지검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피해자 A씨를 만났다.

사건이 발생하고 6개월이 흘렀지만, A씨는 여전히 불안감과 무력감에 일상생활이 어렵다며 깊은 한숨을 지었다. 집 밖으로 나서는 것조차 두렵고, 어딜 가든 뒤를 돌아보며 주위를 살피는 버릇도 생겼다고 한다.

심리 상태가 불안정해 하던 일도 그만둔 피해자는 현재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약으로 하루를 겨우 버티고 있다는 피해자는 “범인도 범인이지만, 국가가 참 원망스럽다”고 토로했다.

“그 사람이 전과가 있었고, 심지어 제게 그런 짓을 했던 당일에도 전자발찌를 차고 있었단 사실을 사건 몇 달 뒤에야 알게 됐어요. 위치추적이든 뭐라도 해서 어디 있는지 빨리 찾았어야 하는 게 아닌가… 국가는 도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죠?”

피해자에게 그날의 기억을 물었다. 도어락이 잠기기 직전 문을 열고 입구까지 들어온 김씨를 피해자는 필사적으로 막았다고 한다. 현관문에서 복도가 다 울리도록 비명을 질렀지만, 밖으로 나와 보는 이웃들은 아무도 없었다.

피해자와 몸싸움을 하는 도중에 김씨가 손으로 도어락을 치면서 기계가 부서졌다. 집 안까지 밀고 들어온 뒤 김씨의 태도가 변했다. “(김씨가) 도어락에 손을 다치면서 피가 흘렀는데, 당황했는지 잠시 침착해지더라”며 “다친 손에 연고를 발라주면서 대화를 시도했다. 시간을 끌어보려고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김씨는 피해자에게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며 자신을 기자라고 소개했다. 본인 사진과 실명, 모 언론사 로고가 박힌 위조 출입증까지 보여줬다고 한다. 또 김씨가 들고 있던 검은 봉투에는 컵라면과 누군가 신은 흔적이 있는 검은 스타킹이 들어있었다.

피해자는 “(범행을)한두 번 해본 사람이 아닌 듯했다. 스타킹을 보니 타깃이 된 또 다른 사람도 있는 것 같았고, 자기만의 수법이 있는 것 같았다”며 “우동 라면을 들고 왔기에 밥을 먹으면서 얘기를 하자고 했다. 그것도 시간을 끌기 위한 일이었다”고 했다.

피해자는 계속 대화를 끌어내면서 김씨를 진정시켰다. 2시간이 넘어가자, 피해자의 마음도 점차 조급해졌다. “이제 돌아가라”고 설득했지만 문 앞에서 다시 김씨의 태도가 돌변했다. 피해자의 갖은 노력에도 결국 범행을 막지는 못했다.

범인이 피해자의 집에 침입한 시간은 아침 8시께. 그가 도주한 뒤 신고를 한 시간은 정오 즈음이었다.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피해자를 구하러 온 사람은 없었다.

지난 3월 초께 피해자에게 수사관이 찾아와 범행 당시 김씨가 휴대폰에 온 전화를 받았는지를 물었다고 한다. 피해자에 따르면 김씨는 집에서 머무르는 동안 10여 차례 걸려 온 전화를 받지 않았다. 피해자는 “그게 보호관찰소 관제센터에서 온 전화였던 거다. 그러고 보니 (범인의) 이상 행동이 기억이 나더라”며 “자꾸 창밖을 쳐다보고 살폈다. 경찰이 자기를 잡으러 오는지 그게 불안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이어 ”범인의 주소지가 강남이더라. 송파구까지 와서 몇 시간을 머물렀는데 어떻게 그 긴 시간 동안 전화만 할 수가 있냐. 정확하게 추적이 안 되더라도 주변에 와서 찾아보고, 사이렌 소리라도 울려줬다면 그 사람은 도망갔을 거다. 그랬다면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피해자는 ”국가의 관리 감독이 너무 허술했다고 생각한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씨가 도주한 후 피해자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은 오후 4시50분께 송파구의 한 노래방에서 김씨를 긴급 체포했다.

지난 3월 서울동부지검은 주거침입강간 혐의를 받는 김씨에게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이후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추가 적용, 지난 12일 결심공판에서 기존 구형에 6개월을 더한 총 징역 20년6개월을 구형했다. 김씨는 자신의 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있다.

김씨의 1심 선고기일은 다음 달 12일 열린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