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 섬마을 주민 돌보는 병원선 3개월마다 낙도 찾는 ‘전남511호’… 공보의-간호사 태우고 섬 77곳 순회 주민 대부분 고령자로 물리치료 인기… 상추-꼬막 등 챙겨와 고마움 전하기도 병원선 2척으로 전남 섬 167곳 다녀… 의료진-주민 입 모아 “자주 방문했으면”
전남 섬마을 주민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선 전남511호. 지난해 9월 건조된 이 배는 390t으로 국내 최대 병원선이다. 고흥=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섬 주민 건강 지키는 ‘바다 위 병원’
수평선 멀리서 초록색 십자가가 선체에 새겨진 ‘전남511호’가 모습을 드러내면 섬 주민 얼굴에 화색이 돈다. “오메, 왔네 왔어!” 동아일보 기자가 전남 77개 섬 주민 건강을 책임지는 이 병원선에 이틀 동안 탑승해 진료 현장을 취재했다.》
11일 오후 1시 20분, 전남 고흥군 남양면 우도 남쪽 200m 해상.
섬에서 보트를 타고 온 주민 8명이 조심스럽게 ‘전남511호’에 올라탔다. 이들은 배 안에 들어서 자연스럽게 접수실로 향했다. 접수실 옆에는 내과 치과 한방과 진료실과 약제실, 방사선실, 임상병리실 등이 배치돼 있었다. 53년째 우도에 살고 있다는 신일남 씨(74)는 “논일을 못 할 정도로 허리가 아파서 왔다”며 “오늘 내과, 치과 진료와 물리치료를 모두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 물리치료실 가장 인기
11일 오후 1시 15분경 환자 수송용 보트에 타기 위해 구명조끼를 착용하는 전남 고흥군 우도 주민들. 큰 배를 위한 정박 시설이 없는 섬의 경우 주민들이 보트를 타고 진료를 받으러 온다.
배에는 의학, 치의학, 한의학 전공 공중보건의가 각각 1명씩 탑승해 주민을 진료한다. 부산에서 인테리어 사업을 하다 5년 전 우도에 들어왔다는 김남석 씨(64)는 “도시에선 약국에서 쉽게 약을 구했는데, 여기선 아파도 해열제 하나 사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미국에 거주하다 여생을 고향에서 어머니와 함께 보내기 위해 3개월 전 섬에 들어왔다는 이재환 씨(55)도 “최근 꼬막 작업을 많이 하면서 허리 쪽이 아팠다”며 진료를 받고 어머니의 약 봉투를 함께 챙겨 갔다.
증상이 심각해지기 전 대형병원을 찾으라고 조언하는 것도 공보의의 주요 업무 중 하나다.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레지던트 1년차 때 그만두고 공보의로 온 김진영 씨(27)는 “최근 혈소판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낮은 간부전 환자를 발견했다”며 “위급한 상황이라 대형병원을 빨리 방문하라고 했다”고 돌이켰다. 한의과 공보의 조재현 씨(27)도 “2주 전 안면 마비 증세를 보이는 환자가 찾아왔길래 빨리 육지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고 말했다.
진료실에서 환자들은 개인적 고충을 털어놓기도 한다. 한 환자는 “얼마 전 남동생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요새 밤에도 잠이 안 온다”고 말했다. 다른 환자는 “작년에 허리 수술을 받았는데 일이 여전히 많다. 쉬고 싶은데 잘 안 된다”고 했다. 김 씨는 묵묵히 듣다 두 환자에게 “힘드셨겠다. 너무 힘들면 꼭 큰 병원에 가 보시라”고 조언했다.
● 병원선 직원들은 섬마을 수호천사
12일 치과 공보의 정회윤 씨(오른쪽)로부터 스케일링을 받고 있는 쑥섬 주민. 이날 정 씨는 주민들의 충치·틀니를 점검하고 스케일링을 해줬다.
전남511호의 최고참은 2006년부터 19년째 병원선 생활을 하고 있는 간호사 이숙연 씨(51)다. 이 씨는 “오랜 기간 섬을 찾다 보니 주민들 얼굴을 거의 모두 외웠다”며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보이지 않을 때마다 혹시 돌아가신 게 아닐까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 “짧은 진료 시간-긴 진료 주기 아쉬워”
환자들에게 약 봉투를 나눠주는 병원선 간호사 이숙연 씨(오른쪽). 고흥=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주민들도 병원선이 더 자주 왔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우도 주민 김선례 씨(57)는 “병원선에서 빠르고 정확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3개월이 아니라 매달 한 번씩 방문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쑥섬 주민 박강국 씨(55)도 “수령할 수 있는 약의 종류나 양이 더 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남도는 현재 병원선 2척을 운영하고 있다. 전남511호는 여수시와 강진·고흥·보성·완도군에 있는 섬 77곳을 돌고 있다. 전남512호는 목포시와 무안·신안·영광·진도·해남군에 있는 섬 90곳을 오간다. 이들 섬 167곳 중 135곳(약 81%)에는 의사가 한 명도 없다. 병원선 두 척에 탄 의료진 15명은 지난해 섬마을 주민 9173명에게 2만4851건의 진료를 제공했다.
고흥=박경민 기자 me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