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죄 폐지론 꺼낸 금감원장] ‘배임죄 폐지 발언’ 환영하면서도 “이복현 개인 의견” 실현성에 의문 “이사 충실의무 불확실성 해소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4일 “배임죄는 유지하는 것보다 폐지가 낫다”고 밝혔지만 재계는 배임죄 폐지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표시했다. 또 배임죄가 폐지되더라도 이사가 ‘회사’뿐 아니라 ‘주주’에게까지 충실하도록 의무를 지우게끔 상법이 개정되면 기업의 경영 불확실성은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이날 “배임죄 폐지를 지지한다는 발언 자체는 환영한다”면서도 “이 원장 개인의 의견일 뿐 정부 대표성을 갖고 밝힌 내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여야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원장이 기자간담회에서 ‘정부 내 합의된 결론은 아직 없다’고 말한 점도 언급하며 “배임죄가 과연 폐지될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이 원장이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게 선진국에선 당연하다고 말한 데 대해서는 “사실과 다르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의 의뢰로 작성한 보고서에서 “미국 모범회사법과 영국, 일본, 독일 등 주요국 회사법에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은 회사에 한정된다”며 “(상법 개정을 찬성하는 측에서) 일부 법에 주주가 포함됐다는 사실을 근거로 제시하나 이는 ‘회사의 이익이 주주 이익’이라는 일반론적 문구에 불과하다”고 했다.
실제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국내 상장사 153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가 확대될 경우 ‘인수합병(M&A) 계획을 재검토하겠다’라고 응답한 곳이 44.4%였다. 8.5%는 ‘철회·취소하겠다’고 답했다.
기업들은 주주 이익을 보호한다는 방향성에는 동의하지만 이같이 경영 불확실성을 키우는 방식의 해법은 오히려 국내 기업의 밸류업(가치 제고)을 막는다고 지적한다. 유경주 한경협 기업제도팀장은 “정부 스스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단기보다 장기 성장에 집중하는 취지라고 했는데 상법 개정안은 이에 반한다”고 했다.
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