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영공 비행하는 미국 군용기 공격 의도 가능성
최근 몇 년 사이 국제 정세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각국 방위산업은 탈냉전 이후 최고 호황을 누리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미국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의 무기 구입이 크게 늘어난 게 주된 요인이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터지고 이른바 ‘저항의 축’에 의해 분쟁이 중동 전역으로 확대되면서 아랍권의 무기 구매량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그 전부터 중국발(發) 안보 위협 증대로 국방비를 꾸준히 늘려온 인도·태평양 지역도 글로벌 방산업계가 주목하는 시장이다.
한국산 중거리지대공 무기체계 천궁-Ⅱ. 국방과학연구소 제공
K-방산 열풍 이면, 한국군 ‘희생’
탈냉전 이후 30여 년간 축소돼온 글로벌 방위산업은 급격히 늘어난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과거에는 주문 후 1~2년이면 인수 가능하던 무기가 길게는 4~5년 이상 대기가 필요할 만큼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다. 주요 무기의 예상 납기는 지금 주문할 경우 미국 F-16 전투기는 초도 물량 인도까지 4년 반~5년, 독일 레오파르트2A7+ 전차는 4년이 걸린다. 가격도 폭등하는 바람에 저렴한 보급형 전투기의 대명사이던 F-16 전투기는 최소 1억 달러(약 1380억 원), 옵션에 따라 1억5000만 달러(약 2070억 원)는 줘야 살 수 있다. 레오파르트2A7+ 전차 가격도 기본 4000만 달러(약 552억 원)에 달하는 실정이다.
‘K-방산 신화’ 수식어가 붙은 한국산 무기가 국제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도 바로 이런 환경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은 무기 수출 승인 절차가 매우 까다로워 애초에 구매 협상을 시작하기가 어렵다. 수출 승인이 나도 설비 부족과 이해관계자 간 ‘밥그릇’ 다툼, 높은 인건비 탓에 생산 속도가 매우 느리고 가격도 비싸다. 반면 한국은 적성국이 아닌 이상 무기 판매에 대단히 적극적이다. 가격과 납기, 기술이전 면에서도 미국이나 유럽보다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군 ‘희생’도 K-방산 판로 확대의 주역이다. 폴란드는 2022년 7월 26일 K2 전차와 K9 자주포를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해 같은 해 12월 6일 1차 물량을 인수했다. 계약 체결부터 초도분 인수까지 4개월가량 걸린 것이다. 같은 날 계약된 FA-50GF 전투기는 계약일로부터 1년이 채 되지 않은 2023년 7월 11일 폴란드에 도착했다. 이처럼 빠른 납품 속도는 계약 전 생산된 한국군용 물량을 전용(轉用)했기에 가능했다. 폴란드에 납품되는 전차와 자주포는 육군 제8기동사단에 배치될 물량이었고, FA-50GF는 훈련기 겸 전술입문기 TA-50 블록 20 버전으로서 공군 제1전투비행단에 납품될 물량을 일부 개조한 것이다.
천궁-Ⅱ 조기 납품 시 안보 공백 우려
자국군 납품 물량을 수출용으로 전환해 판매하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무기체계 도입이 국가안보와 직결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전환한 물량을 대체하고자 새로 주문해도 생산까지는 짧아도 1~2년, 길면 2~3년 넘게 소요된다. 그럼에도 전차, 자주포, 전투기가 해외 수출용으로 용도 전환된 이유가 뭘까. 그 무기들이 당장 한국군에 없어도 심각한 안보 공백이 발생하지 않는 품목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한국군 납품 물량을 전용했을 때 국가안보에 문제가 발생한다면 수출을 서둘러선 안 된다. 지금 이라크와 판매 협상을 진행 중인 천궁-Ⅱ처럼 말이다.
최근 국내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이라크는 3월 국방장관을 한국에 보내 천궁-Ⅱ 구매 의사를 타진했고 최근 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3조5000억 원 규모로 추정되는 이번 계약은 이라크에 천궁-Ⅱ 8개 포대를 수출하는 게 뼈대다. 이라크는 전체 물량 중 3개 포대를 신속히 납품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이 5월 3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참관 하에 실시한 초대형 방사포 위력시위사격. 뉴시스
무기체계는 기본적으로 파괴와 살상을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해외에 판매할 때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누가 사서 어디에 어떤 목적으로 쓰는지, 그것이 국익에 해가 되지는 않는지 종합적 통찰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이라크가 왜 천궁-Ⅱ를 구매하려 하고, 실제 수출이 성사될 경우 우리 국익에 어떤 해악을 끼칠지 모르는 것 같다.
이라크가 중거리 방공무기 도입하려는 까닭
현재 이라크는 모하메드 시아 알수다니 총리가 이끄는 내각이 통치하고 있다. 수다니 총리는 이란과 중국, 러시아와 매우 가까운 반(反)서방 인사로 분류된다. 지난해 6월 영국 언론 ‘이코노미스트’ 보도에 따르면 그의 세력 기반은 ‘인민동원군(MPF)’으로 불리는 민병연합체다. MPF 상당수는 이란이슬람혁명수비대의 통제를 받는 일명 ‘저항의 축’ 구성원이다. 수다니 총리는 이라크 정부군이 아닌 MPF에 정부 지원을 크게 늘리고 있다. 이란과 수다니 내각의 지원을 받는 MPF는 최근 이스라엘에 전쟁을 선포하고 연일 미사일과 드론을 날리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라크와 시리아 각지에서 미군을 상대로 로켓, 드론을 쏘는 무장 세력도 MPF에 가담한 하위 조직인 경우가 많다.
냉정히 따져보면 이라크는 중거리 방공무기가 필요 없다. 현재 이란과 사이가 매우 좋고 같은 ‘저항의 축’ 일원인 시리아와도 관계가 돈독하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요르단 등 다른 이웃 나라들과도 원만하게 지내고 있다. 게다가 이들 주변 나라는 이라크를 공격할 수 있는 중단거리탄도미사일을 보유하지 않았거나, 있더라도 수량이 매우 적다. 그런 점에서 이라크가 천궁-Ⅱ를 원하는 것은 자국 영공을 휘젓고 다니는 외국 국적 군용기, 다시 말해 미국과 이스라엘 군용기를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닌지 의심된다. 자칫 ‘한국산 미사일’이 동맹인 미국과 우방 이스라엘 항공기를 격추하는 데 악용되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당초 이라크가 러시아로부터 구입하려다 무위에 그친 지대공 무기체계 S-400. 위키피디아
미국·이스라엘에 ‘배신’으로 비칠 수도
이라크에 천궁-Ⅱ를 수출하는 것은 스스로 우리 방공망에 구멍을 내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동시에 미국과 이스라엘 입장에선 배신으로 보일 수도 있는 행위다. 이라크에 천궁-Ⅱ를 팔아 얻는 국익이 미국·이스라엘 같은 나라와의 관계를 악화해도 될정도로 클지 냉정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방산 수출’이라는 치적을 위해 국가안보에 해를 끼쳐도 된다고 생각하거나, 무기를 팔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국제정치에 대한 통찰이 없는 이들이 대한민국 외교안보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 있어선 안 된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44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