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환 서울대 교수 인터뷰 신기술, 인간공학적 접근 필수 개발자 아닌 사용자 관점에서 휴먼 팩터 고려한 제품 설계해야
윤명환 교수는 서울대 산업공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산업공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겸 산업시스템 혁신연구소의 휴먼인터페이스연구센터장과 올해 8월 제주에서 열리는 2024 세계인간공학대회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다. 배윤진 DBR 인턴연구원
1968년 스탠리 큐브릭이 감독한 공상과학(SF)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는 생각하고, 말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컴퓨터 ‘HAL 9000’이 등장한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나 영화의 배경이 된 2001년에도 인공지능(AI)은 SF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먼 미래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오랫동안 연구실 안에 존재했던 AI는 최근 세상 밖으로 나와 우리 곁으로 바짝 다가왔다. 운전자가 운전대를 잡지 않아도 AI가 자동으로 운전하는가 하면 마치 인간이 말하듯 자연스럽게 대화나 농담을 주고받는 거대언어모델(LLM)이 등장했다.
이처럼 실험실에만 존재했던 신기술이 상용화될 때는 인간공학적인 접근이 필수적이다. 실험실에서는 성능을 최적화하는 데 집중했다면 시장 밖으로 나와 제품으로 구현될 때는 결국 최종 사용자인 인간의 선택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신체적, 인지적 특성 등 ‘휴먼 팩터(Human Factors)’를 면밀히 고려해 제품 및 서비스 설계에 반영하며 사용자경험을 최적화해야 하는 이유다.
국내 인간공학 권위자인 윤명환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기업이 인간공학적인 접근을 하기 위해서는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개발자가 아닌 사용자, 기술이 아닌 인간의 관점에서 제품과 서비스를 설계하도록 관점을 바꿔야 한다는 설명이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24년 6월 1호(394호)에 실린 인터뷰를 요약해 소개한다.
―기업이 왜 인간에게 주목해야 하나.
“연구실에서 핵심 기술을 개발한 이후 이를 현실에 적용할 때 인간의 신체적, 인지적 특성 등 휴먼 팩터의 중요성이 커진다. 자율주행 기술이 대표적이다. 자동차업체 대부분이 운전자를 보조하는 레벨2 상용화 이후 운전자가 운전대를 잡지 않아도 되는 레벨3 기술 상용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이때 안전한 자율주행을 위해서는 자율주행 시 인간 운전자가 영화를 봐도 되는지, 게임을 해도 되는지, 잠을 자도 되는지 등 휴먼 팩터를 고려해 자율주행 시 운전자가 할 수 있는 행동(NDRT·Non-Driving Related Tasks)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세워야 한다.”
―기업이 휴먼 팩터를 고려하지 않으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
“휴먼 에러(Human Error·인적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과거 영국 공군은 초기 전투기를 만들 때 조종사의 비상 탈출 시 문을 열고 손잡이를 당기면 시트가 튀어 오르게끔 설계했다. 문을 여는 손잡이를 먼저 당기고 탈출하는 손잡이를 당기는 순서였는데 비상 탈출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조종사들이 손에 잡히는 아무 손잡이나 당겨 문에 머리를 부딪히는 사고가 속출했다. 당시 공군은 손잡이를 당기는 순서를 가르치고 훈련시키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휴먼 팩터를 면밀히 고려해 설계하지 않고 사용법을 사용자에게 따로 가르쳐야 하는 건 좋은 제품이 아니다.”
―휴먼 에러의 사례를 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기업이 인간공학적으로 제품을 설계하려면 어떤 전략을 가져야 하나.
“우선 관점을 바꿔야 한다. 개발자가 아닌 사용자, 기술이 아닌 인간의 관점에서 제품이나 서비스를 설계해야 한다. 과거 신한라이프(구 신한생명)와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당시 의료보험금 청구 절차가 필요 이상으로 복잡했다. 청구 절차에 등장하는 금융 용어도 어려웠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청구 절차를 밟는 도중에 주민등록증, 계좌번호, 영수증 등 준비물을 요청해 번거롭게 한다든지, 기껏 과정을 다 거쳤더니 알 수 없는 오류 메시지가 뜨는 식이었다. 시작하기 전 미리 필요한 준비물을 고지하고 “인터넷 연결 환경이 좋은 곳에서 다시 시도해주세요”와 같이 오류 원인을 명확히 알려주면 되는데 사용자 관점에서 설계하지 않은 탓에 여러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었다.”
―세상에 없는 혁신 기술이나 제품을 개발하려는 기업들에 조언한다면….
“우리가 지금 키보드나 마우스를 보면 어떤 제품인지,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지만 30년 전 사람이 이를 처음 접한다고 생각해보자. 이럴 땐 사용자가 익숙하게 수용할 수 있도록 돕는 ‘멘털 모델(Mental Model)’을 제대로 전달해주는 게 중요하다. 비행기가 처음 발명됐을 때 멘털 모델로 삼은 건 배였다. 비교할 만한 적절한 대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항을 에어포트(Airport), 타는 곳을 게이트(Gate), 비행기 조종사를 파일럿(Pilot)이라 부르는 등 전부 항해 용어를 차용했다. 비행을 일종의 공중 항해로 여기고 멘털 모델을 배로 설정한 것이다. 스마트폰의 경우에는 아이콘을 활용해 멘털 모델을 전달했다. 전화기 모양의 아이콘, 시계 모양의 아이콘 등을 활용해 각각의 기능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처럼 잘 개발한 멘털 모델은 신기술이나 혁신 제품을 시장에 안착시키는 데 핵심 역할을 한다.”
“국내 기업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우리가 이렇게 좋은 서비스를 만들어주는데 고객들은 감사하면서 써야 한다’라는 식의 시혜적인 관점을 가진 곳들을 종종 만난다. 이런 공급자, 개발자 관점의 마인드로는 지속적인 성장을 담보하기 어렵기에 태도를 바꿔야 한다.”
최호진 기자 ho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