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심리] 고연봉자도 재산 없으면 안정적 삶 기대하기 어려워
한국 1인당 국민소득이 일본 1인당 국민소득을 넘어섰다. 6월 5일 한국은행 발표에 의하면 지난해 한국 1인당 국민소득은 3만6194달러(약 4990만 원)였다. 반면 지난해 일본 1인당 국민소득은 3만5793달러(약 4930만 원)로, 한국이 일본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401달러 더 많았다. 1인당 국민소득은 국민 1명이 얼마나 소득을 올렸는지, 즉 1년 동안 얼마나 돈을 벌었는지에 대한 값이다.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1년 동안 평균 401달러 더 벌었다는 의미다.
1인당 국민소득, 한국 > 일본
한국인 소득이 일본인 소득보다 더 많으니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 기사를 읽고 걸리는 게 있었다. 사람들이 이 내용을 보고 한국이 일본보다 더 잘살게 됐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더 부자이고, 돈도 더 많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제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았다고, 일본은 더는 한국의 적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부자가 되는 데는 소득보다 재산이 얼마나 많은지가 중요하다. [GETTYIMAGES]
다른 하나의 기준은 가지고 있는 재산이 얼마인가다. 재산이 2000만~3000만 원이면 돈이 없는 사람이고, 재산이 3억~4억 원이면 어느 정도 돈이 있는 사람이다. 재산이 10억 원을 넘으면 돈이 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재산이 몇십억 원 이상이면 부자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부자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기준으로는 소득이 더 중요할까, 아니면 재산이 더 중요할까. 미국 ‘포브스’는 해마다 세계 부자 순위를 발표한다. 최근 세계 최고 부자는 루이비통을 보유한 베르나르 아르노이고, 2위는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3위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다. 포브스는 세계 최고 부자만 조사해 발표하는 게 아니다. 여성 부자 순위, 각 국가의 부자 순위 등도 발표한다. 포브스가 발표한 한국 부자 순위는 1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2위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3위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으로 나타났다. 포브스는 어떤 기준으로 이런 부자 순위를 매길까. 소득일까, 재산일까. 재산이다. 부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때 소득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한 사람의 부 수준을 보여주는 건 소득이 아니라 재산이다. 우리는 누구나 한국 최고 부자가 이재용 회장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회장의 연봉이 얼마인지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이 회장이 삼성에서 일하며 월급을 얼마나 받는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단지 그가 삼성 주식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만 생각한다. 이 회장이 부자인 건 연봉을 많이 받아서가 아니다. 삼성 주식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다. 마찬가지로 머스크가 세계적 부자인 건 테슬라 주식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테슬라 CEO로서 연봉이 높아서가 아니다.
소득이 많고 재산도 많으면 부자를 판단하는 데 별문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소득과 재산이 괴리된 경우가 참 많다. 연봉은 높은데 재산은 거의 없는 경우, 연봉은 낮은데 재산은 많은 경우가 꽤 존재한다. 사람들은 흔히 연봉 1억 원이 넘으면 잘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연봉이 1억 원을 넘어도 가진 총재산이 5000만 원이라면 그는 결코 여유 있는 생활을 하지 못한다. 연봉이 1억 원 이상인데 어떻게 총재산이 5000만 원밖에 안 되느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부모의 빚 때문에, 이전 사업이 망해서, 또는 지출이 커서 등 여러 이유로 연봉이 많아도 재산이 없는 경우가 상당하다. 마찬가지로 소득은 적지만 재산이 많은 경우도 있다. 큰돈을 번 뒤 현직에서 은퇴한 사람은 재산은 있지만 소득은 거의 없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모은 사람은 부동산이 많아 재산은 꽤 되지만, 막상 연봉이라 할 수 있는 소득은 많지 않다.
부자 되려면 돈 관리 기술 중요
연봉은 2억 원이지만 재산은 거의 없다고 치자. 연봉 2억 원이면 엄청난 소득을 올리는 것이다.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인재일 테고,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일이 생겨서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 그래서 더는 그 연봉을 받지 못하게 되면 경제 수준이 바로 급전직하한다. 설령 직장을 계속 다닌다 해도 가족 가운데 큰 병에 걸린 사람이 나오거나 하면 생활수준에 큰 타격을 입는다. 지금은 어느 정도 살고 있지만 내년이 어떨지, 5년 후는 어떨지 전혀 기약할 수 없다. 안정적인 삶을 기대하기 어렵다.
연봉은 3000만 원이지만 재산이 수십억 원 있다고 치자. 이 사람은 현 생활수준을 평생 유지할 수 있다. 직장을 그만둬도 별문제 없고, 중간에 무슨 일이 생겨도 충분히 대처 가능하다. 소득은 없지만 충분한 소비를 누리면서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잘사는 데 좀 더 필요한 것은 소득이 아니라 재산이다. 부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도 소득보다 재산이고, 노년을 안정적으로 지내는 데 필요한 것도 소득이 아니라 재산이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 1인당 국민소득이 일본 1인당 국민소득보다 높다는 이유로 한국이 일본보다 더 잘살게 됐다고 생각해선 곤란하다. 한국의 소득이 일본보다 많아졌을 뿐이다. 하지만 한국의 재산이 일본보다 더 많다고 할 수 있을까. 일본은 한국보다 훨씬 오랜 기간 누적해온 재산이 있다. 한국이 일본보다 소득이 많아졌다고 해서 더 부자가 된 건 아니다. 소득과 재산은 서로 구별해서 생각해야 한다.
소득·재산 늘리는 방법은 달라
부자가 되는 길은 소득이 아니라 재산에 있다. 그리고 소득을 늘리는 방법과 재산을 늘리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다. 자기 분야에서 좀 더 일을 잘하고 인정받고 성공하고 싶은 사람은 소득을 늘리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 하지만 재산을 늘리고자 하는 사람은 돈 관리, 주식·부동산 투자 등 소위 재테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소득이 많은 것에 현혹돼서는 안 된다. 소득을 늘리는 길과 재산을 늘리는 길은 서로 다르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44호에 실렸습니다〉
최성락 경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