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시대, 새 안전규제 필요 국내외 원전 대부분 해안에 인접 해수 취수구로 해양생물 유입 땐… 냉각계통에 문제 생겨 원전 정지 기후변화로 생태계 불확실성 커져… “2026년까지 시스템 개선안 마련”
경북 울진에서 가동 중인 한울원자력발전소.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과학자들이 극한 기후 현상뿐만 아니라 원전 인근 해양생물도 원전 안전의 잠재적 위협 요인으로 지목하고 나섰다. 기후변화의 불확실성에 대비한 선제적인 연구개발(R&D)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1일부터 이틀간 경북 경주에서 원전 안전 규제를 주제로 열린 ‘2024 원자력안전규제정보회의’에서 전문가들은 드론 테러, 해킹 등 기존 원전 안전 위협 요인 외에도 기후변화로 인한 잠재적 위협을 준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대 15cm까지 자라는 대형 해양플랑크톤 ‘살파’. 2021년 3월 경북 울진 한울원전 취수구로 대량 유입되면서 원자로가 정지했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전문가들은 극한 호우나 지진, 강풍 등 위협 요인에 대한 국내 원전의 현재 안전성은 충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래영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대전방사능방재지휘센터 책임연구원은 “이론상 강수량이 최대치일 때 원전 내부 배수로가 막혀 배수가 불가능한 상황을 가정하는 등 가장 보수적인 기준으로 안전 기준이 설정돼 있다”고 말했다. 내진 설계 기준도 까다롭다. 이세현 KINS 구조부지평가실장은 “강풍 또는 강풍에 날린 물체가 건물 외벽 등에 가할 수 있는 하중보다 내진 설계 기준이 훨씬 높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예측하기 쉽지 않은 해양생물이다. 국내외에 가동 중인 원전은 대부분 해안에 있다. 원자로의 열을 식히는 냉각재로 해수를 사용한다. 작은 해양생물이 해수 취수구로 유입되면 냉각 계통에 문제를 일으켜 원전 출력이 감소하거나 원전이 정지하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이미 해양생물에 의한 사고가 발생한 사례가 있다. 2021년 3월 경북 울진 소재 한울원전에서 최대 15cm까지 자라는 대형 플랑크톤인 ‘살파’가 원전 취수구로 대량 유입되면서 원자로가 정지했다. 평소 패턴과 달리 한 번에 많은 양이 유입돼 예측이 어려웠다. 해양생물을 걸러낼 수 있는 취수구 그물망과 지지 설비 등을 정비하긴 했지만 기후변화로 한반도 주변 해역의 수온이 올라가면 해양생태계는 더욱 예측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원자로 정지가 안전하게 이뤄지더라도 경제적 피해는 피하기 어렵다. 정래영 책임연구원은 “원자로가 정지할 때마다 전력 생산이 줄어 큰 피해를 보기 때문에 사업자 입장에서도 대책을 고민할 만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 기후변화 불확실성 커… 미리 대비해야
전문가들은 기후변화가 가까운 미래에 원전 안전에 문제를 줄 정도는 아니라고 예측하면서도 기후변화의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기후변화와 원전 안전 관련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재 기후변화를 고려한 구체적 규제 요건은 전 세계적으로 미비한 상황이다. 기후변화의 직간접적인 악영향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으면 안전 기준의 기술적 보완을 마련하기 쉽지 않다.
이병구 동아사이언스 기자 2bottle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