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수출 물류난] 中기업 “美관세 인상前 물품 보내자”… 밀어내기 수출, 미국行 선박 선점 韓기업 74% “납기차질 빚은적 있어”… 비용 늘고 배 못잡아 “팬데믹때 같아”
석유화학업종 대기업 A사는 통상적으로 소비가 증가하는 3분기(7∼9월) 성수기를 앞두고 걱정이 태산이다. 폴리프로필렌 등 주제품을 북미 시장으로 실어 날라야 하는데, 중국 업체들이 한 달 전부터 컨테이너선을 싹쓸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3개월 단위로 계약하는 컨테이너 운임도 다음 달 재계약 때 최소 50% 넘게 뛸 것으로 보인다. A사 관계자는 “안 그래도 중국의 저가 공세 때문에 적자인데 물류난으로 재고까지 쌓이면 공장을 돌릴 이유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부품 제조 중견기업 B사는 최근 한 달간 미국 공장에 보내야 하는 부품 선적 예약을 세 번이나 실패했다. 당장 이번 주에도 나가야 하는 물량이 있는데 이미 배들이 중국에서 다 찼다고 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B사 관계자는 “미국 현지 공장 라인을 멈출 순 없고, 결국 두세 배 비용을 내고 항공편으로 급하게 부품을 보낸 적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중국 관세 인상 선언으로 국내 수출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중국 기업들이 관세 인상 전 제품을 미국에 보내놓으려고 전방위적인 물량 밀어내기에 나서면서 ‘바다 수출길’을 싹쓸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홍해를 둘러싼 지정학적 위험으로 물류난을 겪고 있던 국내 기업들은 최근 한 달 새 급등한 물류비에 배조차 잡지 못해 ‘팬데믹급 물류대란’에 직면했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통상 대형 컨테이너선들은 북미와 중남미에서 출발해 중국에서 50∼60% 물량을 실은 뒤 한국에서 나머지 물량을 싣고 미주 시장으로 돌아가는 항로로 움직인다. 한 해운사 관계자는 “곧 미국 수출길이 막힐 수 있다는 공포에 중국 업체들이 프리미엄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제품을 내보내면서 물류비가 더 치솟고 배의 선적 공간을 모두 선점하고 있다”며 “관세 대상 품목뿐만 아니라 향후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는 품목까지 가리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사 대상 수출기업의 74.1%는 선적에 어려움을 겪어 납기 차질을 빚은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적 실패로 인한 재고로 비용 상승을 겪고 있다고 답한 기업도 74.1%를 차지했다. 최근 한 달간 해상운송료 증가 폭에 대해서는 ‘50% 이상 올랐다’(20.4%)는 답변이 가장 많았고, 이를 포함해 10곳 중 4곳은 해상 운송료가 30% 이상 올랐다고 답했다.
실제 글로벌 해상 운임 지표인 상하이 컨테이너 운임지수(SCFI)는 지난달 31일 3044.77로 1주 만에 341.34포인트 치솟으며 팬데믹 시기이던 2022년 8월 이후 처음으로 3000 선을 뚫었다. 이달 7일 3184.87, 14일 3379.22로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업체가 7, 8월이면 3개월 단위 계약 기간이 종료된다. 이미 추가 물류에 대한 프리미엄 비용이 기업들의 한계선을 넘으면서 재계약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 대기업도 영향권, 중견기업 바이어 떠날까 비상
대기업들은 미주 현지 공장에서 쓸 부품을 보내기 어려워지면서 영향권에 들어갔다. 삼성전자는 멕시코에 해외 최대 공장을 비롯해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생산 공장을 갖고 있다. LG전자도 미국 테네시주에 세탁기, 건조기 공장을 운영 중이다. 경남 창원 등 국내 부품공장에서 모터를 비롯해 주요 부품이 넘어가야 한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대안 선박 확보 등 대응 조치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기존 홍해 리스크에 더해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대기업들은 상황이 나은 편이다. 한 번에 계약하는 물량이 많고 브로커에 웃돈을 주고서라도 배를 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물량이 상대적으로 적고 물류 네트워크와 대응 시스템도 부족한 중소·중견기업들은 비상 사태다. 김문태 대한상의 산업정책팀장은 “수출기업들은 예상치 못한 해상 운임료 급등과 재고 관리비용 증가로 경영수지 악화를 걱정하고 있다”며 “특히 중소기업들의 경우 이 상황이 여름 내내 이어져 납기 차질이 되풀이되면 공들여 구축해 놓은 미국 현지 바이어들과의 거래가 끊어질까 봐 우려가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한재희 기자 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