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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서영아]고령자의 ‘일’에는 청년의 미래도 담겨 있다

입력 | 2024-06-17 23:10:00

서영아 콘텐츠기획본부장



우연히 스마트폰 명함관리 애플 ‘리멤버’에서 ‘서러운 70살 나이’라는 짧은 글을 읽었다. ‘밤실’이란 닉네임의 필자는 25세부터 대기업 화학 공장에서 33년 일한 뒤 ‘국가품질명장’으로 정년퇴직했다. 이후 안전보건공단 건설안전 지킴이로 12년 근무했으나, 정부 예산절감 정책에 따라 지난해 말 350명이 단숨에 잘릴 때 포함됐다고 한다. 새 일자리를 찾았지만 나이 탓에 서류심사에서 막히고, 경비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 역시 나이의 장벽에 막혔다고 했다.

일하고 싶은 고령자들


여기까진 사실 흔한 얘기다. 재미있는 건 커뮤니티 반응이었다. 평소 직장인들의 회사 생활 고민이나 전직·이직에 대한 소통이 이뤄지는 곳인데, 하루 만에 댓글 119개가 달릴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역시나 “청년 일자리 빼앗지 말고 이제 그만 쉬시라”거나 “그렇게 일만 하면 인생을 언제 즐기느냐”는 반응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30대 초반인 나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퇴사를 입에 달고 사는데, 일에 대한 열정이 존경스럽다”거나 “좋은 귀감이 돼 주셔서 감사하다”며 상당수가 그의 일하고자 하는 의지에 동조하고 응원했다. 사회 여건이 고령사회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이어졌고 “내 미래를 생각해도 정부 차원에서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잘 마련되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 케이스에 대해 길게 쓴 이유는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례자가 워낙 많아서다. 3년 넘게 ‘100세 카페’를 연재하며 만난 수많은 고령자 중에 소박한 일자리를 얻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애를 쓰는 분이 적잖았다. 국내 대형 은행 임원을 지낸 박삼령 씨(78)는 60대 후반부터 산림치유지도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방송대에 편입해 2년, 평생교육원 1년을 공부했다. 1년에 서너 달, 월 200만 원 받는 일을 하기 위해 객지 생활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갈수록 지원자가 늘고 경쟁이 격화돼 일을 따내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다행히 그는 최근 북한산 숲해설가로 재취업했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고령자들이 일을 원하는 건 비단 경제적 이유만이 아니다. 사회에 참여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고 ‘일하는 즐거움’을 누리며 남겨진 시간의 가치를 높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물론 일의 질도 문제가 된다. 본인이 가진 능력과 경험을 살릴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사회구조는 이런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최근에는 조세재정연구원에서 인구대책으로 은퇴 노인 이민 정책을 제안해 논란을 불렀다. 은퇴자들을 이민 보내 생산가능인구의 비중을 높이고 피부양자 비율을 낮추자는 얘기다. 물가와 인건비가 싼 동남아 은퇴이민은 2000년대 초반 일본과 한국에서 한창 유행했던 테마이긴 하다. 원하는 분에게는 그런 노후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고령자들의 머릿수를 지워버림으로써 통계를 맞추겠다는 발상에는 ‘사람’이 빠져 있어 아쉬움을 갖게 한다.

고령자도 생산가능인구로


오히려 생산가능인구 감소가 문제라면 일하고자 하는 의지와 능력, 체력이 있는 고령자를 생산가능인구로 끌어들이는 발상의 전환이 훨씬 현실적이다. 고령자가 오래 생산 현장에 머물면, 건강을 유지하고 돈도 버니 각종 세금도 내고 복지에 신세질 일도 줄어든다. 일찌감치 이쪽으로 방향을 튼 일본이 진행하는 정년연장 등 다양한 사회적 실험을 눈여겨볼 만하다. 한국도 결국은 이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어 보이지만, 그 속도가 고령화 속도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

‘리멤버’에서 한 직장인이 지적했듯, 지금 고령자의 모습은 청년들의 미래다. 청년들이 훗날 ‘서러운 70세’를 맞이해야 한다면, 노인들이 이민 가기 전에 청년들이 먼저 짐을 싸려 하지 않을까.



서영아 콘텐츠기획본부장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