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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통상임금 항목마다 大法서 판결해야 하는 나라가 어딨나”

입력 | 2024-06-17 23:30:00

1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이 본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조희대 대법원장이 “회사의 모든 임금 항목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와야 하는 나라가 어디 있나”라며 통상임금 관련 입법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관련 법령이 모호해 소송이 끊이지 않고 노사 갈등과 사회적 낭비도 극심하다는 것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선 “통상임금의 범위를 명확히 하는 입법 조치를 하는 게 급선무”라고 조 대법원장은 강조했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각종 수당을 산출하는 기준인 통상임금에 대해 “정기적, 일률적,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이라는 기준을 제시했다. 하지만 법률상 규정이 불명확해 구체적 해석을 놓고 노사 간 이견이 커 소송이 줄을 잇고 있다. 조 대법원장은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로운 임금 항목이 생길 때마다 통상임금이냐 아니냐 논쟁이 붙어 소송이 추가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파견근로자 지위 등을 두고도 산업 현장에서 혼선과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파견법에는 파견에 대한 간단한 개념 정의만 있을 뿐 사내 도급과 불법 파견을 구분하는 기준이 불분명하다. 파견 대상 업무를 32개로 한정해 산업 현장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비판도 많다. 이 때문에 건건이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게 된다. 상황이 이러니 통상임금 및 파견근로자 관련 장기 미제 사건이 1000건 가까이 쌓여 재판 지연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소송이 장기화되는 과정에서 노사 간의 소모전도 심각하다. 통상임금 재판 등은 대법원 전원합의체를 거치는 경우가 많아 확정 판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현대제철의 경우 사내 하청업체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은 13년, 통상임금 소송은 11년 만에야 최종 결론이 나왔다. 기아의 통상임금 소송도 9년이나 걸렸다. 법원마다 판단이 엇갈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임금이 1%만 올라도 경영 계획을 다시 짜야 하는 기업 입장에선 기업 경영에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노조 역시 장기간 소송에 매달리면서 불필요한 노사 갈등의 불씨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안은 법을 명확하게 정비해 분쟁의 소지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조 대법원장이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법원 설치에 대해 협의하겠다면서도 “통상임금과 파견근로에 대한 입법 조치도 이뤄지면 법원 판결이 훨씬 빨라질 것”이라고 한 것도 이런 취지에서였을 것이다. 법률 미비로 인해 기업과 근로자들이 겪는 혼선을 국회와 정부가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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