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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차에 매달고 가네?” 10㎞ 추격해 음주운전자 붙잡은 시민 [따만사]

입력 | 2024-06-20 12:00:00

30대 안전관리자 정민수 씨의 그날 밤 이야기



지난 3월 31일 새벽 3시 40분경 경기 시흥시 신천동 한 사거리에서 음주운전 차량이 정차한 쓰레기 수거 차량을 들이받은 뒤 피해자를 매달고 도주하는 모습. 뒤에서 정민수 씨(가명)가 운전해 쫓아가고 있다. 경기남부경찰청 제공


지난 3월 31일 어두컴컴한 새벽, 경기 시흥시 신천동 한 사거리를 지나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길가에 서 있던 쓰레기 수거 차량을 들이박았다. 가해자는 차에서 내리지 않은 채 차를 요리조리 움직였다. 피해 차량 기사가 SUV로 다가와 대화를 시도하자, 가해자는 슬금슬금 속도를 올렸다. 이어 그대로 조수석 창문에 피해자를 매단 채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 광경은 당시 차를 몰며 인근을 지나던 30대 안전관리자 정민수 씨(가명)의 눈에 들어왔다. 정 씨는 대전에서 자격증 시험을 마치고 자택이 있는 시흥시로 올라오던 중이었다. 지인을 근처에 내려주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던 그는 사람이 차량에 매달린 걸 목격하고 위험한 상황임을 직감했다.

가해 차량이 피해자를 창문에 매단 채 도주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경찰청’ 영상

정 씨는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차에 사람을 매달고 있으니까 바로 음주운전 같았다. 우측에 (쓰레기 수거) 차량을 박은 흔적도 있더라”고 설명했다.

정 씨는 즉시 가해 차량을 추격하며 112에 신고했다. “음주 차량으로 보이는데 사람을 매달고 있어요! 빨리 와주세요!” 시흥에 거주한 지 얼마 안 돼 길을 잘 몰랐던 정 씨는 경찰에게 정확한 위치를 설명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가해 차량을 쫓아가는 정민수 씨(가명). 유튜브 채널 ‘경찰청’ 영상

경찰과 계속 통화하며 상황을 설명하던 정 씨는 자신의 차량으로 가해 차량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가해자는 계속 도주했다. 아직도 창문엔 피해자가 매달린 채였다. 정 씨는 “떨어지세요! 떨어지는 게 나아요!”라고 소리쳤다. 가해자가 정상적으로 운전하는 게 아니라 음주운전이 의심되는 상황이었기에 다른 차량이나 벽을 박는 등 2차 사고 위험이 있었다. 2분간 500여m를 끌려가던 피해자는 손에 힘이 빠지면서 땅으로 떨어졌다.

정 씨는 지인 A 씨를 그곳에 내려주며 피해자에 대한 구호조치를 부탁했다. 정 씨와 마찬가지로 안전관리자인 A 씨는 119에 신고한 뒤 병원까지 피해자를 인계했다. 당시 피해자는 스스로 일어나 걸을 수 있을 정도의 상태였지만, A 씨는 “혹시 모르니 병원 가자. 가서 검사 다 받아보셔야 한다”고 설득했다.

가해 차량에 매달려있던 피해자가 땅으로 떨어졌다. 유튜브 채널 ‘경찰청’ 영상 캡처

A 씨가 구호조치에 나설 동안 정 씨는 추격전을 벌였다. 시흥에서 인천 남동구 논현동까지 가해 차량의 뒤꽁무니만 보고 10㎞가량 쫓았다. 50분가량 운전하는 과정에서 과속 단속카메라에 찍히기도 했다. 경찰에 “단속 벌금 내주십니까”라고 물으니 긴급차량이 아니어서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 씨도 “그러면 안 따라가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추격을 이어가야 할지 고민했다. 이때 가해 차량이 순간적으로 비틀거렸다. 정 씨는 “일단 한번 가보겠습니다”라며 속도를 높였다. 다행히 단속 벌금은 추후 경찰 측이 해결해 줬다고.

막다른 길에 이르렀다. 가해자가 차를 버리고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정 씨도 차에서 내려서 뛰었다. 소방서를 지나고 개천을 따라 1㎞ 정도 달렸다.

정 씨는 “차에서 내릴 때는 무섭지 않았는데 이후 한 300m 정도 달렸을 때 무섭더라. 가해자가 뒤를 돌아보면서 ‘야, 따라오지 마’ 그랬다. 개천 쪽에는 카메라도 없고 새벽 시간이라 인적도 드물어서 만약 다치면 바로 구호조치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혹시나 상대방이 흉기를 들었을 수도 있으니까 무서웠다”고 털어놨다.

그러던 중 가해자가 아파트 담벼락을 넘으려고 시도했다. 정 씨는 “이때 조금 웃겼다. 흉기 같은 게 없으니까 저렇게 필사적으로 달리나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담을 넘으려던 가해자가 넘어지자 정 씨도 담에서 내려와 다시 쫓았다.

가해자와 1m 정도 간격을 두고 계속 달렸다. 직접 가해자를 붙들진 않았다. 정 씨는 “혹시 제가 상대방을 잡았다가 상대방에게 상처가 생기면 폭행으로 역고소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현장에 도착한 경찰이 가해자를 검거했다. 당시 가해 남성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 수준(0.08% 이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가해 남성을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도주치상),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음주운전)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고 검찰에 송치했다.

가해자가 경찰에 검거됐다. 유튜브 채널 ‘경찰청’ 영상 캡처

경찰은 정 씨에게 “고생하셨다. 고맙다”고 인사하면서도 “다음부터는 따라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만약 2차 사고가 났는데 가해자가 ‘무서워서 도망가다가 사고 났다’고 진술하면 정 씨가 책임을 져야 했을 수도 있다고.

정 씨는 “그때 저도 왜 보자마자 움직였는지 모르겠다”며 멋쩍어했다. 그는 “안전관리자라는 직업 때문에 사고가 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당시 (음주 차량을) 따라간 것 같다”고 말했다.

7년째 안전관리자로 일하고 있는 정 씨는 “직업의 주목적이 사고 예방이다 보니까 누구 하나 다치면 신경이 굉장히 날카로워진다”며 “이번 사건에서 크게 다친 분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이어 “사실 뉴스에 다 안 나와서 그렇지 아파트 현장이나 건설 현장에서 다치는 분이 많다. 안전관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하시는 분들도 따라 주셔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며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법을 만들어 놨는데 지키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겠나”라고 강조했다.

경찰이 음주운전 차량을 잡은 정민수 씨(가명)에게 감사장을 수여했다. 시흥경찰서 제공

범인 검거에 크게 기여한 정 씨에게 경찰은 감사장을 수여했다. 정 씨는 “제가 뭐라고, 감사하다”며 “감사장을 받은 뒤 기사가 두 개 정도 났다. 그때는 ‘오예’하면서 가족과 친구들한테 기사 링크를 보냈다. 가족들은 다음부터 그러지 말라고 하시더라. 혹시나 보복할까 봐 걱정하셨다. 절대 그럴 일 없다고 안심시켜 드렸다. 제가 덩치도 있고 키도 가해자보다 커서 그런지 저한테 쉽게 다가오진 않더라. 사건 당시에도 저 자신을 좀 믿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언론사 인터뷰를 해도 한두 개나 방송에 나오겠지 생각했다. 나중에 가보로 남기자는 생각이었다”면서 “너무 크게 이슈가 돼서 조금 당황스럽다. 유튜브에 음주운전자 잡는 시민들 영상이 많이 올라오는데 그분들이 더 대단하시다. 저는 뭐 특출나게 한 것도 아니고, 크게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 가해 차량이 속도가 빠른 차종이었으면 못 따라갈 수도 있었다. 제 차량과 속도가 비슷하게 날 수 있는 조건을 갖춰서 잡을 수 있던 거로 생각한다”며 겸손해했다.

그러면서 “기사가 난 뒤 초·중·고등학교 친구들한테 갑자기 전화가 온다. 동창회를 해야 할 것 같다”며 웃어 보였다.

음주운전 차량을 추격해 잡은 정민수 씨(가명). 이혜원 동아닷컴 기자 hyewon@donga.com

20대에는 스키 패트롤(스키장 안전요원) 일을 한 적 있다는 정 씨는 “누가 옆에서 다쳐도 도와주지 않고 본인만 (스키를 타고) 내려가는 사람들이 많더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요즘은 개인주의가 큰 것 같다. 가면 갈수록 더 심해지는 것 같다”며 “예전에 아파트가 없던 시절에는 골목에 많이 살았고 이웃끼리 왕래가 잦지 않았나. 요즘에는 밥도 혼자 먹고 1인 가구도 늘어나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인생은 혼자 살 순 없더라. 누군가는 도와주고 끌어주고, 누군가는 밀어줘야 한다. 채찍질하는 사람이 있으면 당근을 주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저희 현장에 있는 안전관리자들은 ‘안전’이라는 하나의 목표로 굉장히 잘 뭉친다. 현장에서도 채찍을 주는 사람이 있고 당근을 주는 사람도 있다”며 “서로서로 도와가면서 살자”고 강조했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이혜원 동아닷컴 기자 hye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