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갈승은 atg1012@donga.com
인류학자 그레고리 베이트슨의 이름을 들으면 ‘이중구속’ 이론이 떠오릅니다. ‘구속’은 ‘행동이나 의사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속박함’, 법률에서는 ‘…강제로 일정한 장소에 잡아 가두는 일’을 말합니다. ‘이중구속’은 구속이 두 겹입니다. 정신분열병(현재는 조현병)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소통 방식 연구에는 여전히 유용합니다. ‘이중구속’식 소통은 흔하지만 분열과 갈등을 부추겨서 최악의 방식입니다. 의도적으로 시도한다면 비난을 받아 마땅합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이중구속’에 능숙한 사람은 품은 의도를 선의(善意)로 포장합니다. 낙담을 안겨 떠나보낸 사람에게 돌아오면 용서하고 대접해 준다는 손짓은 얼핏 선의로 보이지만, 자유의사에 따라 행동한 사람을 ‘탈옥범(脫獄犯)’으로 여긴다는 ‘고백’으로 들리고 안 돌아오면 처벌하겠다는 의도가 삐죽 고개를 내민 것도 보입니다. 돌아가면 갇히고 안 돌아가면 벌을 받을 수 있게 된 겁니다.
‘이중구속’ 수렁의 역설은 파국이 가까워지면 설계자 역시 빠져서 허우적거리게 된다는 점입니다. 백지화하기에는 체면 사납고 비난이 두렵고, 고집하기에는 초래될 결과가 막연히 불안합니다. 진퇴양난(進退兩難)입니다. 현실을 인정하기는 고통스러울 겁니다. 되도록 오래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려 하지만 이미 치닫고 있는 파국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고삐를 다시 틀어쥐려고 하지만 제시한 당근이 썩었다고 이미 소문이 나서 소용이 없습니다. 떠나게 만든 후에 복귀 명령과 처분을 남발하면서 애를 썼지만 아직도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까요?
어떤 전문(專門) 분야이든지 다른 직역이 원천적으로 이해하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전문인 겁니다. 소신껏 일하도록 선의로 돕거나 적어도 내버려둬야 합니다. “제대로 하기를 명령함!”은 ‘이중구속’의 수렁에 몰아넣는 행위입니다. 모순, 역설, 근거 없는 믿음으로 만든 수렁이어서 원래대로 메워야 겨우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의료 행위는 절대자의 영역이 아니고 확률, 실패와 성공이 공존하는 인간의 영역입니다. 솔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확률을 따지는 인간의 영역에 절대적인 책임을 강요한다면 ‘방어 진료’가 넘치게 되고 그로 인한 의학적, 경제적, 사회적 피해는 고스란히 모두 우리가 부담하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