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해마다 한 번은 스쿠터 여행을 간다. 거창하게 들리지만 스쿠터 한 대를 며칠간 빌려 남편이 운전하고 나는 뒤에 타는 것이 고작이다. 차 대비 불편한 점이 많지만 해를 두고 잊지 않고 찾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스쿠터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그 강제된 단출함이다. 각자에게 허락된 짐이라고는 비좁은 짐칸에 들어갈 작은 가방 하나씩이 전부이다. 그러니 짐을 쌀 때면 고민에 빠진다. ‘이게 꼭 필요할까?’ 그렇게 골라내는 것은 몇 번의 사이클을 거쳐 결국 다음으로 수렴한다. 속옷, 세면도구, 충전기, 다이어리. 욕심부리면 블루투스 스피커. 이렇게 최소한의 짐을 추려낼 때, 나는 어떤 희열을 느낀다. 문득 도망치고 싶은 어느 날이 오더라도 고작 이 정도만 있다면 어디로든 얼마든지 흘러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안도감마저 느낀다. 아침마다 짐을 싸고 옮기는 번거로움이 없는 것은 덤이다.
물론 그 배낭 하나가 진실로 충분할 리는 없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더 많이 얻고자, 더 인정받고, 더 많이 벌고, 더 잘 먹고 많이 갖고자 애쓰는 ‘현생’에서 간헐적으로나마 ‘무소유’를 모사하는 작업에 가까울 것이다. 언제든 축적해온 ‘소유’로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이는 필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작업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소유를 거듭 점검해 두 눈으로 확인하고 양어깨로 짊어지는 그 과정만으로도 의미는 있다. 먼 훗날 정말 긴 여행을 떠나게 되는 날, 그때 가져갈 수 있는 짐은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명징하게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결국 또, 배낭이다. 그러니까 결국 또, 같은 질문을 한다. ‘이게 꼭 필요할까?’
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