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현 산업1부 차장
최근 정보기술(IT) 업계서 주목받은 신조어는 ‘젠새니티’다. 미국 반도체 업체 엔비디아의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의 ‘젠(Jen)’과 ‘광기(insanity)’를 합친 말로 대만에서 광기에 가까운 그의 인기를 의미한다.
인공지능(AI) 열풍에 엔비디아 시가총액이 한때 애플을 제치고 세계 2위에 오르기도 하며 황 CEO는 최근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에서 세계 13위 부호에 올랐다. 외신들은 그를 ‘IT 업계의 테일러 스위프트’라고 불렀다. AI 가속기 시장에서 엔비디아 점유율은 97%. 반도체 업계 전문가들은 당분간 경쟁사들이 엔비디아의 아성을 깨긴 어려울 것이라 보고 있다.
그가 글로벌 IT 업계를 평정한 비결은 상상과 혁신이었다.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처음부터 1위로 출발하는 것이다. 실리콘밸리 벤처투자가 마크 스티븐스는 엔비디아에 창업자금을 댔던 과거를 떠올리며, 엔비디아가 1993년 회사를 설립하면서 삼은 창업 아이템 3차원(3D) 그래픽카드 분야는 “0달러짜리 시장”이었다고 말했다.
아무리 1위였다지만 지포스는 게임 마니아들이나 찾는 ‘틈새 제품’에 가까웠다. 시스템 반도체 시장의 주인공은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을 쥐락펴락하던 인텔이었다.
약 10년 전 엔비디아는 두 번째 도전을 시작했다. 딥러닝이라 불리던 AI였다. 비유를 하자면 CPU는 박사급 인재 1명이 어려운 수학 문제를 하나씩 푸는 방식이다. 반면 GPU는 똑똑한 고등학생 여러 명이 문제를 동시다발적으로 푸는 구조다. 황 CEO는 대량 연산을 동시에 해야 하는 AI 특성에는 CPU보다 GPU가 더 적합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개발에 뛰어들었다. 스티븐스는 당시에도 이 분야를 두고 “0달러짜리 시장”이라고 회상했다.
한국으로 눈을 돌려보자. 최근 우리 산업계 화두는 비상경영이다. 일부 기업은 주 6일 근무로 긴장도를 높였다.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에 기술 격차마저 좁혀진 업종에선 속속 철수하고 있다. 잡히지 않는 물가, 내리지 않는 금리에 경기 침체도 언제 풀릴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은 계속돼야 한다. 이미 젖과 꿀이 흐르는 시장에선 후발주자가 진입하기 어렵다. 1위 업체는 2위의 추격을 막기 위해 기술 격차 확보에 나서고, 대규모의 특허 등록을 통해 후발주자가 쫓아오기 어렵도록 사다리 걷어차기에 사활을 걸기 때문이다.
강유현 산업1부 차장 yh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