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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의 호캉스… ‘회전또어’ 달린 5층 호텔서 ‘은칼’로 양식 조식[염복규의 경성, 서울의 기원]

입력 | 2024-06-19 23:06:00

철도 개통 후 여행객용 숙박시설로, 로비-콘서트홀 갖춘 호화호텔 건립
당시 소설에 “몽상-동화 같은 세계”… “사치의 실험실 같다” 문화적 충격
호텔 장미정원은 非투숙객에도 개방… 공연-활동사진 보던 데이트 코스로



1936년 개봉된 영화 ‘미몽(迷夢)’ 속 조선호텔의 호화로운 객실 모습.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1914년 준공된 호화 ‘조선철도호텔’





1936년 11월 6일 개봉한 영화 ‘미몽(迷夢)’은 현재 영상이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한국어 유성 영화이다. 영화의 주인공 애순은 남편과 어린 딸이 있는 주부로서 가정에 충실할 것을 강요하는 남편에게 반발하여 가출을 감행한다. 그리고 백화점에서 만난 (신사로 가장한) 건달 창건과 동거한다. 마침내 건달의 정체를 알아챈 애순은 그를 버리고 자기가 스타로 추앙하는 무용가를 따라가기 위해 택시를 타고 무리하게 과속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일으킨다. 그런데 하필 택시에 치인 사람은 그녀의 딸이었던 것이다. 그제야 ‘미몽(헛된 꿈)’에서 깨어난 애순이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자살한다는 신파적인 스토리이다.》



염복규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

스토리보다 주목할 점은 가출한 주인공 애순이 거쳐 가는 곳들이다. 이는 백화점, 미용실, 극장 등 당시 경성에서 손꼽히는 근대적인 장소들이다. 영화는 이런 장소를 ‘볼거리’로 제공한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곳은 애순과 창건이 동거하는 ‘호텔’이다. 무일푼의 건달이지만 돈 많은 신사인 체하는 창건은 애순의 마음을 사기 위해 무리하게 호텔에 머물면서 수시로 동료를 만나 호텔 고객의 돈을 강탈할 음모를 꾸민다. 영화는 호화로운 객실과 창건이 친구와 음모를 꾸미는 응접실을 교차하여 보여준다. 이곳은 어디일까? 1936년 경성에서 이만한 시설을 갖춘 유일한 호텔은 ‘조선철도호텔’이다. 명칭에 ‘철도’가 들어간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이 호텔은 철도와 관련되어 있다.

한국 철도의 역사는 1899년 경인선이 개통하면서 시작되었다. 경인선은 처음 미국인 사업가 제임스 모스가 사업권을 따내 부설을 시작했지만 자금난으로 일본 쪽에서 자본을 투자한 경인철도회사가 준공했다. 이후 한반도의 주요 철도는 일제의 침략과 궤를 같이하여 부설되었다. 1904∼1906년 러일전쟁에 출정하는 병력과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일본군은 부산에서 신의주를 연결하는 경부선, 경의선을 개통했다. 병합 이후에는 호남선과 경원선이 잇달아 개통했다(1914년). 1928년 경원선을 연장한 함경선(원산∼함경북도 회령)까지 개통하면서 한반도를 ×자로 꿰뚫는 철도망이 완성되었다.

간선 철도망이 완성되어 가면서 철도를 운영하는 총독부 철도국은 수익 사업을 겸해 일본이나 서양의 고위층 혹은 재력 있는 여행객이 이용할 만한 고급 숙박 시설의 건립을 계획했다. 철도는 여행을 낳고, 여행은 호텔을 낳은 셈이랄까? 1912년에는 부산역 구내에 부산철도호텔이 최초로 개관했다. 1914년에는 경의선 종착역인 신의주에, 1922년에는 평양에도 철도호텔이 잇달아 개관했다.

경성의 철도호텔도 1912년경 신축을 결정했다. 위치는 소공동의 대관정(大觀亭) 맞은편으로 결정했다. 기차역과 경성 핵심부의 중간쯤 되면서 일본인 중심지인 남촌의 입구에 해당하는 곳이다. 대관정은 원래 선교사 주택으로 지은 것으로 대한제국 정부가 매입하여 영빈관으로 사용한 서양식 건물인데 러일전쟁기에는 일본군이 사령부로 사용했다. 이 무렵부터 소공동은 주둔군 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후일 2대 조선 총독)의 이름을 따 장곡천정(長谷川町)이라고 불렸다. 그런데 호텔 건립을 예정한 대관정 맞은편에는 대한제국이 건립한 환구단(圜丘壇)이 있었다. 환구단은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제단으로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건립한 시설이다. 총독부 철도국은 환구단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철도호텔을 건립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준공 직후의 조선철도호텔을 담은 사진엽서. 보통 조선호텔로 불리게 된다. 대한제국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제단인 환구단(圜丘壇)을 철거한 자리에 지었다. 왼쪽에 정자처럼 보이는 건물은 원래 환구단의 부속 건물로 제사에 쓰는 신위를 보관하는 황궁우(皇穹宇)다. 염복규 교수 제공 

경성의 철도호텔은 식민지 수도의 시설로서 명칭도 경성이 아니라 조선철도호텔로 불렸다. 보통 ‘조선호텔’로 불리게 된다. 설계도 경복궁에 신축할 총독부 청사를 설계한 독일인 건축가 게오르크 데 랄란데가 맡았다. 그는 중국의 독일 조차지인 칭다오에서 활동하다가 일본으로 건너와 여러 서양식 건물 설계에 참여한 인물이다. 조선을 대표하는 상징성이 있으니만큼 건립 예산도 거액인 80만 원을 책정했으며, 자재는 모두 영국, 독일 등에서 수입했다. 직원용과 고객용을 구분한 엘리베이터, 서양식의 욕실과 화장실, 난방, 세탁, 제빙 설비, 지상층에 로비, 라운지, 콘서트홀, 다목적홀, 응접실, 대식당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춘 지상 5층의 조선호텔은 1914년 9월 정식 준공했다. 당시로서는 ‘초고층’ 건물이었다. 사실 총독부 청사, 경성부청, 경성역 등 식민지 수도의 랜드마크라고 할 만한 건물들은 1920년대 중반 집중적으로 준공했다. 비교적 이른 시기에 건립된 조선호텔은 앞으로 경성 시가지에 형성될 새로운 경관을 미리 보여주는 건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철도호텔의 여러 시설과 이용 요금을 소개한 팸플릿. 숙박료는 1박에 3원 50전∼14원, 식대는 1∼3원으로 표기돼 있다. 당시 조선인 남자 교사 평균 봉급이 40∼50원 수준이었다. 독립기념관 제공 

조선호텔은 보통 사람이 접근하기에는 매우 부담스러운 시설이었다. 이광수는 조선호텔 대식당을 “밝은 전등에 비취인 고전식 붉은 방 장식과 카펫과 하얀 식탁보와 부드럽게 빛나는 은칼과 삼지창과 날카롭게 빛나는 유리 그릇과 그리고 온실에서 피운 가련한 시크라멘, 모두가 몽상과 같고 동화의 세계”라고 묘사했다.(이광수 ‘유정’·1933년) 유진오의 소설 ‘화상보’(1938년)의 주인공 시영은 가난한 지식인이다. 그는 유럽 유학을 마치고 세계적인 성악가가 되어 돌아온 옛 연인 경아를 만나러 그녀가 묵고 있는 조선호텔로 간다. 그에게 조선호텔은 “마음이 저절로 긴장되”는 곳이다. 당황하지 않으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지만 “붉은 칠한 호텔문을 들어서자 벌써 오지 못할 데나 온 듯이 마음이 불안하기 시작하”고, “정면 현관의 회전또어를 밀고 집속으로 들어가 짙은 자주빛 털담요 위에 섰을 때에는 벌써 가슴까지 약간 울렁거리는 것이었다.” 그에게 조선호텔은 “모든 것이 그저 화려하고 그저 으리으리하다. 사람이 일상 거처하는 곳이라느니보다도 사람이 얼마나 사치를 할 수 있는가를 시험해보는 거대한 실험실 속 같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것이 경아의 세계였던가”라고 좌절한다. 실제 조선호텔의 이용 요금을 보면 1925년 기준 숙박료는 1박에 3원 50전에서 14원, 식대는 양식 조식이 1원, 석식이 3원이었다. 당시 보통학교 교사라 하면 조선인으로 굉장히 좋은 직업이었는데 1920년대 조선인 남자 교사 평균 봉급이 40∼50원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조선호텔의 ‘문턱’이 얼마나 높은지 짐작할 수 있다. (마침 ‘화상보’의 주인공 시영의 직업도 교사로 설정되어 있다.)

그런데 조선호텔에도 서민에게 개방된 공간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장미 정원’을 들 수 있다. 조선호텔의 명소 중 하나인 장미 정원은 1918년 조성되었다. 1901년 대한제국과 수교한 벨기에 영사관이 문을 닫을 때, 그 뜰의 장미를 인수한 것이라고 한다. 장미 정원은 1924년부터는 호텔 투숙객이 아닌 일반에도 개방되었다. 이 공간은 이태준의 소설 ‘사상의 월야’(1942년)에 등장한다. “은주 어머니는 송빈이와 은주더러 활동사진 구경이나 갔다오라 하였다. 송빈이는 우미관으로 갈까 단성사로 갈까 하는 은주를 데리고 조선호텔로 온 것이다. 전에 윤수 아저씨를 따라 한 번 와본 적이 있는 ‘로오즈 가아든’으로였다. 호텔 후원에는 여러 가지 장미가 밭으로 피었는데, 50전만 내고 들어오면 꽃구경은 물론이요 악대의 음악연주도 있고 아이스크림도 주고 나중에는 활동사진으로 금강산 구경까지 하는 것이었다.” 소설의 묘사와 같이 조선호텔 장미 정원은 당시 상대적으로 저렴한 경성의 데이트 코스 중 한 곳이었다. 호텔에 투숙하는 호사를 누릴 수는 없는 가난한 연인이 조선호텔이라는 ‘동화의 세계’의 맛이라도 볼 수 있는 공간이었던 셈이다.



염복규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