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젊은 여성이 고양이처럼 몸을 둥글게 웅크린 채 대리석 벤치에 누워 잠들어 있다. 하늘거리는 밝은 오렌지색 드레스가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한다. 프레더릭 레이턴이 그린 ‘불타는 유월’(1895년·사진)은 가장 사랑받는 빅토리아 시대 명화 중 하나다. 한데 제목이 왜 ‘불타는 유월’일까?
레이턴은 19세기 말 영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예술가 중 한 명으로 20년 가까이 왕립아카데미 회장을 지낸 인물이다. 이 그림을 그린 건 그의 명성이 최고조에 달해 있던 65세 때였다. 그림은 도덕적 교훈보다 회화의 순수한 아름다움과 시각적 쾌락을 중시했던 그의 예술적 태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모델의 포즈는 미켈란젤로의 조각 ‘밤’을 참조했다. 사실 모델의 몸은 비현실적이다. 길게 늘어난 허벅지와 목, 접힌 팔은 거의 완벽한 원을 이루지만, 해부학적으로 불가능한 포즈다. 여자 뒤에는 햇빛을 받아 이글거리며 빛나는 바다가 묘사돼 있다. 오른쪽 식물은 협죽도로 지중해성 기후에선 6월에 가장 큰 꽃이 핀다. 아마도 화가는 6월의 어느 날 자신의 화실에서 잠든 모델의 모습을 보고 이 그림의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왜 그림 제목이 ‘불타는 유월’인지가 설명된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오렌지색 드레스다. 속살이 훤히 비치는 데다 잠든 여자의 볼도 붉게 상기돼 있어서 감상자들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실제로도 화가와 모델이 연인 관계로 발전하는 건 그 시대에 흔한 일이었다.
이 그림은 1895년 왕립아카데미 전시에 출품돼 큰 찬사를 받았다. 이듬해 1월 24일 레이턴은 영국 왕실에서 남작 작위도 받았다. 화가로서 최초였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 협심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단 이틀 사이에 그는 인생 최고의 명예와 허무를 다 겪은 셈이다. 결국 그림은 캔버스 위에서 생애 마지막 열정을 불태웠던 화가의 뜨거웠던 유월을 대변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