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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김창덕]‘로또 분양’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

입력 | 2024-06-19 23:18:00

김창덕 산업2부장



신반포15차를 재건축해 다음 달 공급될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펜타스’ 일반 분양가가 최근 결정됐다. 3.3㎡당 6737만 원. 1월 서초구 잠원동에서 분양한 ‘메이플자이’(6705만 원)를 넘어 사실상 역대 최고가라고 한다. 같은 달 주인을 찾은 서울 광진구 광장동의 ‘포제스한강’이 1억 원대였지만 아파트라기보단 초고급 빌라에 가까운 단지다.

원펜타스는 높은 분양가 이상으로 눈길을 끄는 게 있다. 어마어마한 기대 수익이다. 원펜타스 분양가는 가장 작은 전용면적 59㎡가 16억 원대, 84㎡는 23억 원가량이다. 작년 8월 입주한 인근 ‘래미안 원베일리’의 비슷한 평형대 매매가격은 각각 32억 원과 43억 원 안팎. 원펜타스 30평형대에 당첨되면 당장 20억 원 가까운 시세차익을 얻는다는 얘기다.

‘복권 제조기’ 전락한 분양가상한제

원펜타스가 ‘로또 분양’이라 불리는 이유다. 청약시장은 벌써부터 들썩인다. 몇 년간 전매가 제한되고, 비록 3년 유예된 상태지만 실거주 의무도 있어 단기 차익 실현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닌데도 말이다. 액수가 20억 원이라면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시장에선 보는 모양이다.

이런 기현상은 집값을 억누르기 위해 고안된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고 있기에 벌어진 일이다. 2005년 3월 도입된 이 제도는 천정부지로 솟은 아파트 분양가를 인위적으로라도 끌어내리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투기과열지구 중에 분양가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의 2배가 넘는다든지, 거래량이 갑자기 늘면 적용 대상으로 지정된다. 분상제는 도입 후 폐지와 부활을 거듭했다. 최근에는 2020년 7월 민간 택지까지 확대 시행됐다가 지난해 1월부터 다시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아직까지 분상제가 적용되고 있는 지역은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구뿐이다.

분상제 적용 아파트가 복권으로 둔갑한 것은, 바꿔 말해 정책 효과가 작았다는 말과 같다. 분양가를 낮춰 주변 시세까지 안정시키길 바랐지만 결과적으로 그러지 못했다. 결국 분상제는 청약 당첨자들에게 인근 단지와의 시세차익을 선물로 안겨주는 장치로 전락했다. 물론 분양가 상한선이 없었다면 재건축조합이나 시공사가 더 챙길 수 있었던 몫을 일반 분양자가 일부 나눠 갖게 된 셈이라는 주장도 있다. 제3자가 보기에는 ‘도긴개긴’일 뿐이지만.

원펜타스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수많은 청약 대기자들이 있지만 대부분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일반 분양자가 시세차익을 챙기려면 본인 수중에 적어도 20억 원의 현금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거주 의무가 3년 유예돼 당장은 전세를 놓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이들도 있는데, 3년 후 실거주 의무제가 폐지된다는 보장은 없다. 목돈을 쥔 사람들에게만 입장권이 교부된 ‘그들만의 리그’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 나오는 배경이다.

일부에선 편법과 탈법이 횡행할 수 있다. 시장에선 “자금이 한 푼도 없더라도 청약을 넣지 않으면 바보”라는 말이 공공연히 돌고 있다. 일단 당첨만 되면 어떻게든 방법이 생긴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금융기관 대출 조건이 까다로운 만큼 외부 자금이 법망을 피해 들어오는 과정에서 시장이 혼탁해질 수밖에 없다.

부작용 컸던 정책들 과감하게 걷어내야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고 내놓은 수많은 정책들은 ‘실패’의 멍에를 쓰고 수정되거나 사라졌다. 연명 중인 분상제가 바로 그런 정책의 한 사례다. 이미 많은 부분 완화돼 효력이 줄어든 종합부동산세도 정치권에서 폐지 얘기가 흘러나오는 중이다.

아파트값은 무리한 정책으로 수요를 찍어 누르면 누를수록 오히려 팽창하는 힘이 커지곤 했다. 제 몫을 다하지 못한 규제나 세제는 이제라도 과감하게 걷어낼 필요가 있다.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라는 기본 중의 기본에 시장을 한번 맡겨 보는 건 어떨까.



김창덕 산업2부장 drake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