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환 국제부 차장
“현실에서 도망치려 한 적도 있죠. 그런데 불가능하단 걸 아시잖아요?”(라얀 하루다·26)
한국에선 요즘 청년들을 MZ세대라 묶는 경우가 잦다. 하지만 분명 Z세대는 또 다르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 출생을 일컫는 그들은 지금 딱 20대쯤 된다. Z세대 눈엔 30대에 들어선 밀레니얼(M)세대 역시 그저 ‘좀 젊은 아저씨’일지도.
세대 규정에 동의하진 않지만, Z세대를 거론할 때 한결같이 꼽는 특징이 있다. 그들 다수는 “모바일 디지털 월드가 없는 세상”(미국 뉴욕타임스·NYT)을 살아본 적이 없다. 어디서나 손에 쥔 휴대전화로 ‘접속’이 가능한 삶. 역시 날 때부터 존재했던 소셜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보고 관계를 형성하는 건, 그들에겐 자연스럽다 못해 당연했다.
하지만 Z세대는 달랐다. 미 정치매체 액시오스는 지난달 “미국인 18∼29세 가운데 이번 전쟁에서 이스라엘 편을 든 건 14%뿐”이란 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2배가 넘는 33%는 팔레스타인을 응원한다고 했다. 실제로 미 Z세대가 선호하는 틱톡 게시물 조회수를 비교하면, 친(親)팔레스타인 게시물이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영상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러셀 앨런 씨(23)는 한 인터뷰에서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의 이스라엘 지지를 일종의 ‘검열(censors)’로 여긴다”며 “소셜미디어에 드러난 팔레스타인 청년들의 고통에 훨씬 공감 간다”고 했다.
팔레스타인은 Z세대가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중위연령(median age)이 22세로, 15∼29세가 인구의 30%를 넘는다. 이스라엘은 중위연령이 43세로 한국(46세)과 엇비슷하다. Z세대에겐 소셜미디어를 통해 바라본 팔레스타인 동년배의 고통이 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을 수 있다.
실제로 당사자인 팔레스타인 Z세대가 느끼는 절망은 탈출구가 없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이들은 1993년 오슬로 협정(Oslo Accords)으로 그나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평화적 공존을 꾀하던 시기를 모른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평생 분쟁밖에 겪지 못한 그들은 평화적 공존은 불가능하단 인식이 깊게 뿌리박혀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현 전쟁이 언젠가 끝을 맺어도, 위험천만한 불씨는 그대로 남을 거란 어두운 관측도 나온다. 주변 사람들이 일상처럼 희생당한 경험은 청년들에게 총이란 선택지만 남겨줄 거란 전망이다. 라얀도 마찬가지였다. “폭력의 고리를 끊고 싶지만, 가족을 잃은 친구가 무장세력에 가담하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정양환 국제부 차장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