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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후원물품 사려고 줄 서지 마세요”

입력 | 2024-06-20 03:00:00

쪽방상담소 내 ‘온기창고’
후원물품을 편의점처럼 진열… 쪽방촌 주민들이 자율로 구매
150m까지 이어지던 줄 사라져… 서울에 5곳으로 확대하기로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돈의동쪽방상담소에 있는 온기창고 2호점에서 최영민 돈의동쪽방상담소장(오른쪽)과 서울시 이신옥 주무관이 주민에게 후원되는 물품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온기창고 사업을 기획한 이 주무관은 이번 인사에서 특별승진됐다.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온기창고가 생긴 뒤로는 두루마리 휴지나 치약처럼 내가 원하는 걸 알아서 가져갈 수 있어서 훨씬 좋아요.”

18일 서울 종로구 돈의동쪽방상담소 1층에 있는 온기창고 2호점에서 만난 박동열 씨(62)가 이날 구매한 생필품들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박 씨는 온기창고에서 참기름, 구강세정제, 조미김 등을 골랐다. 온기창고는 쪽방촌에 들어온 후원 물품을 매장에 진열해 주민들이 지급 받은 적립금 한도 내에서 필요한 물품을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일종의 ‘쪽방촌 편의점’이다. 현재 서울역과 돈의동 등 2곳에서 운영하고 있다. 박 씨는 “예전에는 줄을 한참 서서 물건을 받아 갔는데 이제는 기다리는 시간도 많이 줄었다”며 “후원품을 받을 때 재고가 없는 품목은 삼삼오오 다른 곳에 가서 사야 했는데 이젠 그런 비용도 아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한 온기창고가 호평을 얻고 있다. 서울시는 이 사업을 기획한 이신옥 주무관을 사무관으로 특별승진시키고, 서울 내 쪽방촌 5곳으로 사업을 확대하기로 했다.

● 줄 설 필요 없이 생필품 구매

이날 온기창고가 문을 여는 오전 10시부터 쪽방상담소 앞에는 주민들의 발걸음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온기창고에는 사골육수, 즉석 공기밥, 양갱 등 먹거리부터 주방세제, 칫솔, 양말 등 생필품들이 다양하게 준비돼 있었다. 적립금 500원으로 살 수 있는 물품부터 가격대가 다양했다.

예전에는 후원품이 들어오는 날이면 쪽방상담소 앞은 물품을 받기 위해 나온 주민들로 북새통을 이뤘다고 한다. 최영민 돈의동쪽방상담소장은 “물건을 못 받을까 봐 불안감에 일찍 나와 몇 시간씩 기다리는 주민이 대다수였다”며 “150m 넘게 줄을 서야 했고 서로 먼저 왔다며 언쟁이 벌어진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기업, 개인, 기관으로부터 받은 후원물품을 편의점처럼 진열해 쪽방촌 주민들이 직접 필요한 물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날 상담소 앞에는 약 20여 명의 주민이 줄을 서 있긴 했지만 기다리는 시간은 10여 분 내외로 비교적 짧은 편이었다. 주민 민모 씨(59)는 “문 여는 시간에는 줄을 서긴 하지만 오후에는 바로 물건을 가져갈 수 있다”고 했다.

● 온기창고 ‘적극 행정’ 사례로

온기창고는 이 주무관이 2년 전 쪽방촌 담당 부서로 발령이 난 뒤 직접 기획한 사업이다. 당시 해당 부서가 오세훈 서울시장의 지시로 ‘쪽방촌 주민 지원 종합대책’을 마련하게 되면서 이 주무관도 현장을 뛰어다니며 사업을 기획했다고 한다. 그는 “상담소장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후원품을 받는 과정에서 필요하지 않은 물품까지 상자째로 받아가 좁은 방에 물건이 잔뜩 쌓여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후원 물품도 줄을 서지 않고 골라서 갈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서울역·돈의동 상담소 직원들과 여러 차례 만나 편의점 형태 모델을 도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주무관은 올 6월 인사에서 서울시의 첫 ‘5급 특별승진자’로 내정됐다. 특별승진은 지난해 2월 서울시가 공무원들의 창의적인 사업을 장려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이 주무관은 “상담소에서 적극 도와줘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며 “향후 쪽방상담소 5곳에 모두 온기창고를 운영하고 상담소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주민에게는 적립금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등 자활 모델로 발전시키려고 계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