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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헷갈리는 ADHD-자폐스펙트럼, 구별해야 치료 부작용 없어요”

입력 | 2024-06-20 03:00:00

ADHD와 자폐스펙트럼, 뭐가 다를까
ADHD, 약물 통해 70% 호전되지만… 자폐스펙트럼에 적용 땐 증상 악화
산만한 행동에 사회적 통념 없다면, ADHD 아닌 자폐스펙트럼 가까워
질환 오인해 시기 놓치는 경우 많아… 아이 다양한 행동 자세히 관찰하길



천근아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는 5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의대에서 진행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ADHD인 줄 알았던 아동이 사실은 자폐스펙트럼장애 질환인 경우가 적지 않다”며 “두 병은 치료법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질환인지 잘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학부모 이모 씨는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약을 복용하면서 고민이 늘었다. 이 씨는 앞서 담임교사로부터 “아이가 수업 시간에 전혀 집중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약을 처방받았다. 그런데 아들은 약 복용 후 오히려 예민함과 공격성이 늘었다. 이 씨는 “호전되기는커녕 다른 증상이 생기며 더 악화됐다”고 말했다.

아동기 ADHD 발병률은 8∼10%다. 초등학교 한 반이 25명이라면 2명 정도가 ADHD일 정도로 흔한 질환이다. 그런데 ADHD 중 10명 중 6, 7명은 다른 질병이 함께 나타난다. 이 씨 아들처럼 ADHD 약을 먹고도 효과가 별로 없고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났다면 다른 기저 질환을 의심할 필요가 있다.

자폐스펙트럼장애 분야에서 국내 최고 권위자인 천근아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이사장)를 5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의대에서 만나 ADHD와 자폐스펙트럼장애에 대해 물었다. 천 교수는 학부모 사이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4년은 기다려야 하는 교수로 유명하다.

―ADHD와 자폐스펙트럼장애는 어떻게 다른가.

“종이접기에 관심이 있는 아이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ADHD가 있는 아이는 선생님이 ‘국어 교과서 펴야지’ 하면 색종이를 후다닥 서랍 안에 넣었다가 눈치를 보며 종이접기를 한다. 반면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있는 경우 자신의 행동이 왜 잘못됐는지 이해를 못한다. 자신이 생각한 대로 학을 10마리 접는 게 중요할 뿐이다. 이처럼 자폐스펙트럼장애는 ‘수업 시간에는 선생님 말을 들어야 한다’는 사회적 지식(통념)이 결핍된 것이다. 반면 ADHD는 혼나는 걸 알지만, 종이접기 하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하는 것이다.”

―둘을 오인하는 경우도 많겠다.


“물론 제가 자폐스펙트럼장애 환자를 많이 진료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발달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많이 오기도 하지만, ‘아이가 산만하다’며 오는 부모로부터 아이의 행동을 들어보면 자폐스펙트럼장애의 한 특성으로 부주의성이나 과잉행동이 있는 것을 ADHD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다. ADHD와 자폐스펙트럼장애가 공존하는 경우나 ADHD가 아닌 자폐스펙트럼장애였던 경우 ADHD 치료약물을 복용하면 효과가 부족하고 부작용이 커진다.”

―두 질환의 치료법이 어떻게 다른가.

“ADHD는 약물로 70%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약물 치료를 단독으로 했을 때와 약물 치료와 비약물적 치료를 병행했을 때 효과가 유사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물론 약을 최소한으로 쓰면서 효과를 극대화하고 장기간 복용하지 않으려면 아이는 행동치료와 사회성 훈련, 부모는 부모 교육을 함께 받는 게 좋다. 대표적인 ADHD 치료 약물은 도파민 분비를 늘리는데, 자극에 과도하게 민감한 자폐스펙트럼장애에 쓰면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격이 된다. 자폐스펙트럼장애는 핵심 증상에 대한 치료 약물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고 동반된 문제 행동을 개선하는 약물만 있다. 핵심 증상 개선을 위한 근거가 확립된 치료는 언어 치료, 행동 수정 요법, 사회적 기술 훈련 등이다.”

―어떤 증상일 때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의심할 수 있나.

“상대방과 구어체로 대화가 잘 안 되고 책 읽는 듯한 문어체 표현이 많을 경우나 특이하고 반복적인 관심사가 있는 경우다. 특이한 관심사가 어린 시절에는 반복 행동이었다가 점차 특정 주제로 바뀌기도 한다. 영유아기에는 자동차 바퀴 돌리기, 선풍기, 실외기 한없이 쳐다보기 등을 하다 학령기 전후에 지하철 노선도를 달달 외우는 식이다. 언어가 제때 발달하고 지능이 정상인 자폐스펙트럼장애 질환자는 ADHD인 줄 알았다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문제 행동이 심각해진 후에 뒤늦게 진단받는 경우도 많다.”

―부모가 의사를 찾기 전 해야 할 일이 뭔가.

“의사가 아이를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자세한 병력 청취다. 종합주의력(CAT) 검사는 불안하거나 우울해도 충동성이나 부주의성 지표가 높게 나올 수 있다. 따라서 CAT 결과에만 의존해 ADHD라고 판단해선 안 된다. 부모가 가정 외에 학교나 학원 등 여러 환경에서 아이가 어떤 에피소드를 보였는지 자세히 알고 있어야 한다. 의사에게 ‘아이가 너무 산만하다’가 아니라 ‘친구가 귀찮아하는데도 계속 숫자를 이야기하고 쓴다’ ‘급식 먹을 때 줄을 못 서고, 친구를 자꾸 건드린다’ 등으로 자세히 말해줘야 한다.”

―ADHD 진단 후 투약을 주저하는 부모가 많다.

“아이 속에 반짝반짝한 진주알이 너무 많지만 흙이 잔뜩 묻어 잘 보이지 않는데, 약이 흙을 털어내 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ADHD는 치료를 안 한다고 생명이 위험한 병은 아니지만 약을 먹으면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 제때 치료를 안 하면 다른 병이 더해질 수 있다. 산만하고 사고뭉치라며 혼나고, 문제를 끝까지 못 읽어 성적도 안 나오면 자기 비하로 우울증이 올 수도 있다. ADHD인 것을 뒤늦게 알게 된 성인 환자가 ‘부모가 제때 치료해줬더라면 삶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한탄하는 것도 봤다.”

―ADHD 자녀를 부모가 어떻게 대하면 좋을까.

“앞에 있는 게 궁금하다고 친구를 밀치고 보는 게 아니라 ‘나도 볼 수 있을까’라고 욕구를 표현하도록 연습시켜야 한다. 아이가 기다리는 것에 성공하면 ‘컵을 만지작거리지 않고 잘 기다렸어’ 등 구체적으로 칭찬해줘야 한다. 수학 공부를 하다 갑자기 ‘급식에서 싫어하는 음식이 나왔다’고 말한다면 ‘우리 급식 이야기는 수학 문제 다 풀고 나서 하자’라며 언제 말할지 예측하게 해주는 게 좋다. 부모가 아이의 부족한 전두엽 기능을 보완해주는 것이다.”

―자녀가 ADHD 치료 중이라는 걸 학교에 알려야 하나.


“부모와 교사가 서로 신뢰하고 솔직하게 의사소통하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 부모가 교사를 아이의 치료 파트너로 삼을 때 예후가 더 좋다는 걸 많이 경험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