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기능 저하 증상 83세 정금남씨 월드컵 예선 앞둔 10일 직접 만나 만남 내내 손 꼭잡고 “너무 말랐다” 손흥민 “응원 영상 보고 감동 받아”
손흥민(오른쪽)과 그의 팬 정금남 할머니가 10일 축구 대표팀 숙소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유튜브 화면 캡처
“토트넘이란 큰 부대가 있는데 그 부대 주인장이오.”
치매를 앓고 있는 정금남 할머니(83)는 눈앞에 손흥민(32·토트넘)이 나타나자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한참을 바라봤다. 그러다 ‘누구인지 아시겠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정 할머니는 치매 때문에 인지 기능이 떨어져 있었지만 손흥민을 한 번에 알아봤다.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정 할머니는 손흥민이 뛰는 모든 경기를 챙겨볼 뿐 아니라 집안 곳곳을 그의 유니폼과 사진으로 채워 놓은 ‘손흥민 바라기’이기 때문이다.
손흥민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올라온 영상을 통해 정 할머니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손흥민은 “할머니 덕에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든다. 만나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영상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할머니는 이 영상을 받은 뒤 “만날 수 있을까. 나는 못 만날 것 같은데”라면서 “만나면 끌어안아주고 싶다”고 했다.
손흥민은 휠체어에 앉아 있는 정 할머니의 눈높이에 맞게 자세를 낮춘 채 “감사하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손흥민은 “항상 응원해주셔서 진짜 정말 감사하다. 영상을 보고 정말 감동받았다”고 했다. 손흥민은 국가대표 유니폼에 사인해 선물하며 “내일 이거 입고 오세요. 할머니를 위해 열심히 뛰어다닐 테니까 열렬히 응원해 주세요” 하기도 했다.
정 할머니는 손흥민이 훈련 시간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자 “얼른 가. 괜찮아”라고 했다. 그러나 손흥민이 떠난 뒤에는 “아쉽다. 얼굴도 참 이쁘고…”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손흥민이 선물한 유니폼을 입고 이튿날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찾은 정 할머니는 환한 미소를 띤 채 “지금이 83세인데 100세까지 축구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훈 기자 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