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0일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금수산영빈관 정원구역에서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친교를 두터이 했다고 전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북한이 20일 공개한 북-러 간 ‘포괄적 전략적동반자 협정’ 8조는 “방위능력을 강화할 목적 밑에 공동조치들을 취하기 위한 제도들을 마련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전쟁 방지와 국제적 평화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이란 전제를 달았지만 사실상 북한에 러시아의 핵·미사일 관련 첨단 군사기술 이전의 길을 터준 것일 수 있다는 분석이 정부 내부에서도 나온다. 전략핵추진잠수함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재진입 기술 등 러시아의 ‘게임체인저급’ 첨단기술 제공까지 현실화할 명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기술의 이전이 현실화하면 미국의 대북 확장억제(핵우산) 및 한국과 미국 안보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북한이 지난해 9월 진수한 ‘전술핵공격잠수함’은 재래식 잠수함이다. 핵탑재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싣더라도 수시로 물 밖으로 나와 축전지를 충전하고, 연료도 주기적으로 공급받는 과정에서 위성 등에 발각되기 쉽다. 반면 핵연료를 쓰고, 핵탑재 SLBM까지 실은 전략핵추진잠수함은 무제한 잠항이 가능한 ‘핵보복 병기’다. 군 당국자는 “북한이 이번에 맺은 조약을 근거로 미국의 대북 확장억제가 러시아 안보에도 큰 위협이라고 주장하면서 전략핵잠용 소형 원자로 설계 기술을 요구할 수도 있다”고 했다.
북한이 고체연료 기반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8형’을 시험발사하는 모습. 평양 노동신문=뉴스1
ICBM 재진입·다탄두 기술도 북한이 눈독을 들이는 분야다. 이미 고체연료 ICBM ‘화성-18형’을 개발한 북한에 재진입 기술은 ICBM 완성의 ‘최종 관문’이다. 뉴욕과 워싱턴을 동시 타격할 수 있는 다탄두 능력 역시 아직 입증하지 못했다. 그런 만큼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치르는 러시아에 무기 지원에 대한 반대 급부로 ICBM 관련 기술을 콕 집어 요구할 근거를 이번 조약을 통해 ‘문서’로 확보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밖에 고해상도 정찰위성과 우주발사체 엔진 기술 이전 역시 북한이 적극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각에선 북한과 협정을 맺었지만 러시아가 핵심 중의 핵심 기술인 전략핵잠과 ICBM 재진입 기술까지 순순히 내주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이 경우미국 주도의 서방 봉쇄가 더욱 심해질 수 있는 데다 지나친 북-러 밀착을 경계하는 중국의 반발 등도 예상되는 만큼 러시아가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란 것. 그런 만큼 북-러간 군사협력은 일단 낮은 단계부터 진행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북한도 이런 상황을 고려해 재래식 전력 협력부터 요구할 수 있다. 군 관계자는 “한미의 킬체인(선제타격)에 대응한 노후 방공망 개선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북한은 평양과 핵·미사일 기지 등에 삼중사중의 방공망을 운용중이다. 하지만 그 주력인 SA 계열의 지대공미사일 상당수가 도입한지 40년이 넘었고, 레이더와 사격통제장치도 낡아서 제 성능을 발휘하기 힘든 상황이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