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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모인들의 모(毛)자란 꿈[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입력 | 2024-06-21 11:00:00

글로벌 신(新) 비즈니스 가이드(53)




‘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탈모 동지’의 배신

사진출처=pixabay

미국 경제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의 스펜서 맥노턴 기자(33)는 튀르키예로 모발 이식을 받으러 다녀온 체험기를 지난달 12일(현지시간) 공개했다. 기사는 국내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탈모’를 해결하는 완벽한 치료제가 아직 없고, 모발 이식에 관한 관심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2022년 8월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 피트니스 센터 수영장. 맥노턴은 절친 베넷이 모자를 벗었을 때 행복과 질투, 충격, 두려움 등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휑했던 베넷의 머리가 풍성해졌기 때문이다. 베넷은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모발 이식을 받고 왔다고 했다. 맥노턴은 평소 본인보다 나이가 3살 많고 탈모가 더 진행된 베넷을 ‘탈모 멘토’로 여기고 있었다.

맥노턴은 24살 때 친구가 찍은 동영상에서 자기 머리에 동전만 한 구멍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8년간 대표적인 치료 방법을 다 써봤다. 미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한 발모제를 두피에 바르고 치료제도 복용했지만, 탈모는 계속 진행됐다.

줄어든 머리카락만큼 자존감은 떨어졌다. 밖에서는 탈모 부위를 보기 싫어서 보안 카메라나 거울을 피해 다녔다. 부모와 탈모에 관해 얘기할 때는 울음이 터졌다. 우울함이 극심해지면 (휑한 이마를 감추려) 뒷걸음질로 방에서 걸어 나오기도 했다. 결국 그는 탈모에 대한 집요한 생각을 떨쳐내려고 항우울제를 복용했다. 맥노턴은 “내가 매력적이지 않고, 더 이상 남성적이지 않은 것 같았다”며 “너무 빨리 늙어가는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2023년의 대부분을 베넷을 떠올리며 보냈다. 10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 머리를 심을지, 얼마 남지 않은 머리를 밀어 버릴지 스스로 물었다. 베넷이 성공 케이스로 보였지만 외국에서 수술받아야 한다는 점과 수술 자체의 안전성 등이 마음에 걸렸다.

맥노턴은 직업 정신을 살려 튀르키예 모발 이식 수술을 자세히 살펴봤다. 친구의 주치의였던 서칸 아이진 박사는 평이 좋아 보였다. 모발 이식 수술과 관련해 상을 받은 적이 있었고, 권위 있는 출판물에서 전문가로 인용되기도 했다. 미국의 저명한 대학 의료진들이 포함된 국제 피부과 학회의 회원이기도 했다.

그는 취재하다 보니 이스탄불에서 머리를 심고 온 사람이 주변에 꽤 있었다는 점도 알게 됐다. 집 근처 헤어샵의 미용사와 헬스장 직원, 친구 2명 등 튀르키예에 다녀온 뉴요커가 최소 4명은 더 있었다. 이들은 모두 훌륭한 경험이었다며 후기를 공유했다. 맥노턴은 튀르키예 이스탄불행 항공권을 구매했다.

맥노턴 기자의 절친인 베넷이 튀르키예에서 모발 이식을 받기 한 달 전과 시술 11개월 이후를 비교한 모습. (비즈니스인사이더)



탈모인 성지 ‘헤어스탄불(헤어+이스탄불)’
지난해 12월 터키항공 비행기에 탄 맥노턴은 양옆 탑승객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터키항공을 ‘모발’과 ‘에어라인’을 합쳐 ‘헤어라인’이라고 부름) 왼쪽에 앉은 뉴저지주 출신의 21살 청년과 오른쪽에 탄 청년의 사촌도 모발 이식을 받으러 간다고 해서다.

전 세계 탈모인들이 모발 이식을 하러 튀르키예까지 가는 가장 큰 이유는 그만큼 저렴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모발 이식 비용은 대략 1만 달러(약 1400만 원)에서 2만 달러(2800만 원) 사이다. 맥노턴은 아이진 박사가 있는 병원에 3500달러(약 480만 원)를 선불로 냈다. 상담과 수술, 사후 관리, 숙박비(4성급 호텔에서 3박), 현지 교통비 등을 포함한 금액이다. 항공료 2000달러(약 280만 원)를 따로 내야 하지만 그래도 미국의 3분의 1 수준이다.

튀르키예는 다른 나라보다 물가와 임금이 낮은데다 정부가 의료 관광 산업을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편이다. 튀르키예 정부는 의료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병원에 보조금을 주고 세금도 깎아주고 있다. 그러다 보니 모발 이식 비용이 다른 나라보다 싸다. 그 덕분에 튀르키예 의료 관광은 2019년 이후 50% 늘었다. 2022년에만 외국인 100만여 명이 모발이식을 하려고 튀르키예를 찾았다.

맥노턴은 아이진 박사가 있는 클리닉에서 여러 명의 탈모 동료들과 마주했다. 아이진은 의사 20명, 모발 이식 기술자 80명, 마취과 전문의 8명과 하루 20~22건의 모발 이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아이진은 3차원(3D) 촬영으로 맥노턴의 건강한 모발을 분류했다. 맥노턴은 검사 결과 사진을 보면서 손상된 모낭과 탈모 상태에 대해 들었다.

모발 이식 25년 경력의 아이진은 색연필로 맥노턴의 머리에 모발을 옮겨 심을 곳을 모내기하듯 구획을 나눠 표시했다. 아이진은 머리카락이 아직 나고 있는 뒤통수에서 3400개의 모낭을, 수염에서 600개를 채취해 머리에 이식할 것을 제안했다. 이식한 모낭에선 2~3가닥의 새로운 머리카락이 나온다고 했다. 6개월에서 1년 사이에 8000개가 넘는 새로운 모발이 자라난다는 뜻이다. 아이진은 맥노턴에게 거울을 들이대며 “마음에 들 것”이라고 말했다. 머리에 새로운 헤어라인이 그려져 있었다. 15분의 상담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동아일보 DB



모(毛)자란 기자의 모발 이식 후기  
수술대에 누운 맥노턴은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을 맞고 마사지를 받는 자세로 엎드렸다. 아이진과 마취 의사 한 명, 기술자 4명이 수술실에 들어왔다. 뒤통수에 마취하고 약 3시간 동안 모낭 채취 작업이 시작됐다. 기술자 중 한 명은 모발 이식 과정을 뜨개질에 비유했다. 손재주와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오후 2시에 시작한 모발 이식은 8시간이 지난 10시쯤 끝났다. 맥노턴은 카페테리아로 이동해 직원들이 준 닭가슴살과 주스를 먹었다. 그는 막 수술을 끝낸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온 손님과 이야길 나눴다. 맥노턴은 “어지러웠지만, 감격스럽고 자랑스러웠다. 성취감을 느꼈다. 우리는 그 빌어먹을 일을 해냈다”며 감동했다.

모발 이식이 전부는 아니었다. 이식받은 모발을 유지하려고 탈모약도 함께 먹어야 했다. 한 달간 써야 할 샴푸와 (두피에 바르는) 로션 사용법도 들었다. 2달 동안에는 낮에 외출 시 모자를 써야 한다고 했다.

수술 4개월이 지나자 새 머리가 맥노턴 이마의 일부를 채웠다. 반년이 지나면 수술 효과가 더 나타난다고 했다. 맥노턴은 “이제는 친구와 가족과 사진을 찍을 때 포즈를 취하고 싶다. 회의에서도 자신감이 생겼다”고 전했다.

맥노턴은 ‘헤어스탄불’을 다시 찾아야 할 수도 있다. 아이진은 처음 머리를 완전히 메우려면 2번의 시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절친 베넷은 현재 두 번째 시술을 받으러 다녀왔고 결과에 만족하고 있다고 한다. 맥노턴은 “이번에는 이 모든 여정에 영감을 준 베넷이 수영장에서 제 새로운 머리를 보고 놀라 쓰러질 차례”라고 전했다.

의료진이 맥노턴 기자의 두피에 건강한 모발을 심고 있다. (왼쪽 사진) 오른쪽은 시술이 끝나고 미소 짓는 맥노턴 기자의 모습. 비즈니스인사이더



모발 이식의 아버지 ‘노만 오렌트라이히’ 
모발 이식은 언제 어떻게 시작됐을까. 1897년 튀르키예의 한 의사가 머리가 빠진 부위에 건강한 두피를 이식한 사례를 시작으로 꼽는다. 공여부(모발 제공하는 부위)의 모발이 수여부(모발 이식받는 부위)에서 자랄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한 사례다.

실질적으로 모발 이식이라는 개념을 만든 것은 노만 오렌트라이히(1922~2019) 박사였다. 뉴욕시립대에서 생물학과 화학을 전공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 의무대에 징집되면서 의학에 발을 들였다. 전쟁이 끝나고 뉴욕대 의과대에 다시 입학했고, 졸업 이후에는 뉴욕대 의료센터 피부과에서 일하며 대학원 과정도 마쳤다.

오렌트라이히는 1953년 뉴욕대 의료센터의 모발 클리닉 책임자를 맡게 됐는데, 당시에는 모발 성장과 탈모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시기였다. 마땅한 치료법도 없었다. 그는 모발 성장과 탈모에 대해 알아보려고 두피 일부를 떼어내 보기도 하고, 뒤통수에서 모발을 떼어내 머리의 다른 부위에 심어보기도 했다. 오렌트라이히는 이 과정에서 이식한 모발이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계속 자라나는 것을 발견했다. 또, 다른 부위의 털을 머리에 이식해도 성질이 변하지 않는다는 점도 알게 됐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오렌트라이히에게 유레카의 순간이었다”며 “그는 모발 이식을 본격적으로 치료법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그의 아이디어가 너무 급진적이어서 연구는 몇 년 지난 1959년 뉴욕과학아카데미 연보에나 실릴 수 있었다”고 전했다.

사실, ‘모발 이식의 아버지’인 오렌트라이히는 피부 미용 전문가로 더 알려져 있다. 맨해튼 어퍼이스트사이드 5번가에 있는 그의 클리닉에 유명인들이 몰렸다. 뉴욕매거진은 1968년 “오렌트라이히가 간호사에게 유명 배우인 캐리 그랜트를 계속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을 기자가 우연히 들었다”고 전했다. 미국 팝아트 거장 앤디 워홀 역시 그의 고객이었다. 패션 매거진 코스모폴리탄의 전 편집장 헬렌 걸리 브라운은 “한 달에 한 번씩 주사를 맞으러 오렌트라이히를 찾는데 항상 건물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사람들로 가득했다”고 전했다.

오렌트라이히는 1967년 미 패션지 보그 8월호에 피부 관리법을 주제로 한 글을 올렸는데, 이 글을 레너드 앨런 로더가 유심히 봤다. 레너드 로더의 어머니는 화장품 회사를 창업한 에스티 로더다. (보그 글은 피부 관리는 클렌징-각질 제거-보습의 3단계를 거치는 게 좋다는 내용. ‘피부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라고 여겨지던 시절이라 반응이 뜨거웠다)

로더는 오렌트라이히를 스카우트해 화장품 브랜드를 만들게 했다. 오렌트라이히는 젊은 여성을 타깃으로 한 스킨케어 라인 ‘크리니크(Clinique)’를 선보였다. 크리니크는 1969년 영국을 시작으로 80개국 이상에서 매장을 열었고, 에스티로더 그룹의 핵심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NYT는 “오렌트라이히는 피부과, 성형외과 의사들이 기업가처럼 자신의 이름으로 스킨케어 브랜드를 개발하고 판매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고 평했다. 크리니크 직원들이 병원 의료진처럼 흰 가운을 입는 이유가 있었다.

1950년대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노만 오렌트라이히 박사. NYT



털을 자라나게 하는 약물들 
사실, 많은 탈모인이 모발 이식보다는 치료제를 먼저 떠올린다. 머리를 심는 것은 너무 큰 결심이 필요하고,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빠져버린 머리카락을 완벽하게 다시 나게 하는 약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FDA는 1988년 ‘미녹시딜(제품명 로게인폼)’ 성분을 탈모 치료제로 처음 공식 인증했다. 미녹시딜은 원래 1950년대에 미국 제약사 화이자가 궤양을 치료하려고 만든 약물이다. 그런데, 궤양에는 효과가 없고 혈관을 확장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화이자는 고혈압 치료제로 미녹시딜을 선보였는데, 환자들 사이에서 털이 자라는 부작용이 발견됐다. 혈관이 확장돼 혈류량이 증가하면서 모근에 영양이 공급되는 효과가 있었던 것. 모낭 크기가 커지고, 모발이 빠지고 다시 자라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줄었다.

제약사는 FDA에서 미녹시딜을 바르는 로션 형태의 탈모약으로 승인받았는데, 실제로는 알약으로도 많이 처방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호주 멜버른대의 로드니 싱클레어 박사가 한 여성 탈모 환자를 진료하다가 바르는 미녹시딜을 처방했다. 그런데, 환자 피부에서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났다. 싱클레어 박사는 고민 끝에 미녹시딜 알약을 4등분으로 잘라줬다. 그 결과, 머리카락은 자랐지만, 혈압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했다. 싱클레어 박사는 1만 명 이상의 탈모 환자를 미녹시딜 알약으로 치료해 효과를 봤다고 밝혔다.

다만, FDA는 미녹시딜 탈모약을 저용량의 로션 성분으로만 승인했기 때문에 알약 형태는 아직 탈모 치료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다. 제약사들은 20년 가까이 미녹시딜 알약의 효과에 대한 임상시험을 하지 않았다. 미녹시딜을 하루 먹는 데 드는 비용이 1센트(약 14원)에 불과해 돈이 되지 않기 때문. NYT는 “몇 푼 안 되는 오래된 약이 새 머리카락을 자라게 한다”고 보도했다.

탈모 전문가들은 미녹시딜이 탈모 환자의 30~40%에게만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게다가 약을 계속 먹어야 효과가 있다. 복용을 중단하면 다시 탈모가 진행할 확률이 높다.

미녹시딜에 이어 두 번째 FDA 승인을 받은 ‘피나스테리드(제품명 프로페시아)’는 미녹시딜보다 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탈모치료제다. 피나스테리드 역시 처음에는 다른 치료제로 등장했다. 글로벌 제약사 머크는 1992년 FDA에서 피나스테리드를 고령 남성에게 흔히 발생하는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제품명 프로스카)로 승인받았다. 머크는 프로스카가 연 10억 달러(약 1조4000억 원) 수익을 안겨줄 것으로 예상했지만 기대만큼 이익을 거두진 못했다. 대신, 미녹시딜처럼 이 성분이 탈모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점을 파악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FDA는 1997년 피나스테리드 1mg이 담긴 머크의 신약 프로페시아를 탈모 치료제로 승인했다”며 “의학이 태동한 이래 남성들이 간절히 원했던 치료제가 드디어 등장한 것처럼 보였다”고 전했다.

미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을 찾은 한 40대 환자가 경구용 미녹시딜을 복용하고 탈모를 극복한 모습. 미 존스홉킨스 의과대학



부작용이 없는 약은 효과가 없는 약?
세계적인 국제학술지인 미국의학협회 피부과학저널(JAMA Dermatology)은 탈모 치료제들의 효과를 비교한 연구를 2022년 발표했다. JAMA에 따르면 탈모 치료에 가장 효과적인 것은 하루 0.5mg의 두타스테리드를 복용하는 것이다. 두타스테리드는 피나스테리드와 같은 원리의 약물로 FDA에서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로 허가받았다.

피나스테리드(5mg 복용)가 2위를, 경구용 미녹시딜(5mg)이 3위를 차지했다. JAMA는 “피나스테리드는 복용 이후 48주째에, 미녹시딜은 8주 뒤에 모발이 가장 많이 증가했다”고 했다. 웨이크포레스트 의료센터의 에이미 맥 마이클 박사는 “가장 좋은 약은 부작용이 없는 약”이라며 “시간을 되돌리기보다 현재 모발을 유지하는 게 훨씬 낫다”고 설명했다.

피나스테리드와 두타스테리드는 효과는 뛰어나지만, 성욕 감소, 발기부전 같은 성기능 장애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혈관을 확장하는 미녹시딜과 다르게 남성 호르몬을 억제하는 원리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대머리를 고치기 위해 망가지는 것을 감내할 건가요?’라는 제목의 기사를 올해 4월 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수천 명의 남성들이 피나스테리드로 인해 치명적인 부작용을 겪고 있다고 소개했다.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다”는 미용사의 이야기를 들은 20대 대학원생 벤은 머리카락에 대한 집착이 갈수록 심해졌다. 잠들기 직전까지 탈모에 대해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날 때는 베개에 흐트러진 머리카락들을 헤아렸다.

벤은 미녹시딜을 사용해봤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는 탈모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알려진 피나스테리드 약을 먹을지 고민했다. 비용 때문이 아니었다. 2013년 특허가 만료된 이후 저렴한 제네릭(복제약) 치료제들이 많았다. 그가 고민한 이유는 우울증, 성 기능 장애 같은 부작용 때문이다. 일부 남성들은 복용을 중단한 이후에도 부작용이 지속된다고 믿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를 ‘피나스테리드 복용 후 증후군(PFS)’이라 불렀다.

코로나19 대유행이 한창이던 2020년 벤은 집에 머물면서 수시로 거울을 들여다봤다. 한 여사친(여자 사람 친구)이 과거에 다정다감한 성격의 지인에 대해 했던 말도 떠올랐다. “대머리잖아.” 벤은 정신과 의사를 찾았다. 의사는 피나스테리드를 복용해보라고 조언했다.

2021년 봄 벤은 피나스테리드를 먹기 시작했는데, 친구들과 여자친구가 벤의 마음을 되돌렸다. 그의 여자친구는 “머리가 좀 빠지면 어때”라고 말했다. 벤은 남은 처방전을 버렸다. 그런데 며칠 후 폭풍우가 몰아쳤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역시 탈모로 마음고생 중인 인물 중 한명이다. 그는 2018년 한 연설에서 “저는 탈모 부위를 숨기려고 필사적으로 노력 중이다. 버티고, 버티고, 또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치의는 그가 피나스테리드 성분의 ‘프로페시아’를 복용 중이라고 밝혔다. (NYT) 



낮은 확률이지만 무서운 부작용
어느 날 쇼핑센터 식당을 지나다 벤의 심장이 요동쳤다. 주변에서 비명 같은 소음이 들렸고 정신이 혼미했다. 공황 발작 비슷한 증상은 몇 시간 지나고 사라졌다. 벤은 온라인에서 피나스테리드를 복용하고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남성들을 발견했다.

첫 발작 이후 벤의 증상은 더 심해졌다. 근육이 빠르게 사라졌고, 성욕도 줄었다. 벤은 몇 개월 동안 하루 4~5번의 공황 발작을 겪었다. 진정제를 먹어야 하루 3시간이라도 잘 수 있었다. 벤은 자살할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호르몬 처방을 거부한 이후에는 주차장 꼭대기까지 차를 몰고 가 차에서 내려 가장자리로 걸어가기도 했다.

벤은 투신하지 않았다. 그는 가족들에게 자신의 증상을 털어놓고 호르몬 수치를 되돌릴 수 있는 병원을 함께 찾아다녔다. 벤은 일주일에 세 번 호르몬 치료를 받으며 회복하고 있다. 기분의 기복이 아직 크지만 발작 증세는 현저히 줄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머크는 피나스테리드 1mg 복용 임상시험에서 약 3.8%의 환자가 발기 부전 등의 성적 부작용을 경험(위약 그룹은 2.1%)했다. 또, 환자가 약물 복용을 중단하면 부작용이 해결된다고 밝혔다. 머크는 피나스테라이드가 영구적인 성적 또는 심리적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일관되게 부인해 왔다.

이코노미스트는 “머크는 2009년에 자살 충동, 우울증 등 200건의 부작용 사례를 보고받았다”며 “FDA는 이후 843건의 자살 충동과 200건의 자살 보고를 추가로 접수했다”고 전했다. 머크 측은 자사 약물과 극단적인 사건 사이의 인과 관계를 입증할 충분한 데이터가 없다고 주장했다. FDA는 2010년 머크에 우울증 위험 경고를, 2012년 지속적인 성기능 장애 위험에 대한 경고를 약품 포장에 추가하도록 요청했다. 2022년에는 자살 충동도 위험 목록에 넣게 했다.


그 많던 머리카락은 다 어디로 갔을까
평균적으로 한 사람의 머리에는 약 10만 개의 머리카락이 있다. 보통 하루 50~60개 머리카락이 빠지고 채워지며 순환한다. 머리카락이 5년 정도 생존하다가 빠지면 탈모라고 하지 않는다. 1~2년 정도 유지하다가 빠지면 탈모라고 볼 수 있다. 하루에 100여 개 머리카락이 빠지는 건 심각한 일은 아니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매달 머리를 자른다. 삶의 일부일 뿐, 머리카락의 존재에 대해 (미용적인 것을 제외하고)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머리카락은 자체적인 규칙과 분자, 염증 메커니즘을 가진 엄청나게 복잡한 기관이다. 모발은 세포 분열로 생명을 유지한다. 인체에서는 유전 정보가 담긴 염색체가 복제하는데, 모발 세포는 15~25회 분열한다. 한 번 빠진 머리카락이 최대 25번가량 다시 자란다는 뜻이다. 피부과 의사인 아라시 모스타기미 하버드 의과대 부교수는 “두피 모낭은 기본적으로 그 자체가 하나의 신체 기관”이라며 “모낭은 자체 줄기세포를 가지고 있어 스스로 재생한다”고 말했다. 탈모를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 있다. 생명과학의 문제다.

탈모는 비만 못지않은 인류의 난제이기도 하다. 특히, 남성들에게 그렇다. 남성의 약 90%는 평생 어떤 형태로든 탈모를 겪게 된다고 한다. 50대가 되면 남성의 절반이 남성형 탈모(앞머리나 정수리 모발이 빠지는)를 경험한다. FDA에 따르면 30만 명 이상의 미국인이 심각한 원형 탈모증을 앓고 있다.

다행히, 탈모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시장이 커지면서 제약사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탈모를 미용상의 문제로 치부했던 과거와 다르게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불안과 우울증을 유발하는 관리해야 할 질환으로 인식하게 된 점도 긍정적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22년 북미 탈모 치료제 시장은 19억4800만 달러(약 2조7000억 원) 수준이었다. 스태티스타는 2030년에는 탈모약 시장이 30억8100만 달러(약 4조3000억 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모발 이식이나 탈모 관련 미용용품까지 더하면 실제 탈모 관련 시장은 이보다 훨씬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의사들은 탈모가 시작하면 빠르게 병원을 방문하라고 조언한다. 제대로 된 상담을 통해 약 등을 적절히 처방받아 진행을 막으라는 것이다. 부작용 없는 약은 효과가 없는 약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를 우려해 약을 멀리하는 남성들이 아직 많다. 최근 전 세계를 뒤흔든 비만약 ‘위고비’처럼 부작용이 적은 약이 나올 순 없을까.

전문가는 그동안 모발 관련 연구가 많이 진행된 만큼 (위고비처럼) 갑작스럽게 효과적인 치료약이 등장해 우리를 놀라게 할 수 있다고 했다. 모스타기미 부교수는 “탈모 문제가 난치병처럼 보이지만 언젠가는 미녹시딜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광범위한 치료법이 나올 수 있다”며 “하룻밤 사이 성공하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40년이 걸린 일”이라고 말했다.

▶덴마크 제약사의 비만 치료제 ‘위고비’에 관한 내용은 신비월드 43화 참고
“이 약 사려고 ‘투잡’ 뛰고 있습니다”[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230927/121409679/1



김성모 기자 m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