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가 대학에 가면 부모는 ‘에듀푸어’에서 졸업한다. 다달이 수십만 원, 많게는 100만 원 넘게 통장에서 빠져나가며 가계 살림을 옥죄던 사교육비가 굳기 때문이다. 대학 등록금을 내야 하지만 학원비에 비하면 큰 부담이 아니다. 지난해 국공립대 연간 등록금(394만 원)은 초등학생 사교육비(554만 원)보다 적고, 사립대(733만 원)는 고교생 사교육비(888만 원)보다 못 한 수준이다. 모든 물가가 오르는 동안 대학 등록금은 ‘반값 등록금’ 규제에 묶여 15년간 동결된 탓이다.
▷등록금 고지서에 찍히는 명목 등록금은 2011년 이후 큰 변화가 없지만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실질 등록금은 855만2000원에서 685만9000원으로 14년 새 20%나 줄었다. 최근 10년 사이 미국 대학 등록금은 1만7200달러→3만2000달러, 영국은 4980달러→1만2300달러, 일본은 8040달러→8740달러로 올랐는데 한국만 역주행한 셈이다. 법에는 ‘직전 3개년 평균 물가상승률의 1.5배 내’에서 올릴 수 있게 돼 있지만 이 경우 정부의 지원을 못 받기 때문에 사실상 사문화된 규정이다. 대학이 법정 기준만큼 등록금을 올리지 못해 발생한 결손액이 28조 원에 이른다.
▷정부 재정이 들어가는 국립대와 달리 재정의 63%를 등록금 수입에 의존하던 사립대는 학생 수 급감까지 덮쳐 재정 파탄 위기에 내몰린 상태다. 생존하려니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 50만 개가 넘던 강좌 수를 43만 개로 줄였고 연구비, 실험실습비, 도서구입비, 시설투자비도 내리 삭감했다. 연구 역량과 교육의 질이 좋아질 리 있겠나. 중고교보다 못한 시설에 놀란 학생들이 “등록금 올려도 좋으니 빔프로젝터 바꾸고 화장실 좀 고쳐 달라”고 요구하는 학교도 있다.
▷전국 135개 대학 총장들이 최근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하계 세미나에서 대학 등록금 규제를 풀어 달라고 호소했다. 대학 경쟁력을 위해 고민해야 하는 자리에서 10년 넘게 같은 요구를 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정부 지원 포기하고 등록금 올리느냐, 지원금 받고 등록금 포기하느냐는 구시대적 고민을 호기롭게 교육 규제 철폐를 내세운 정부에서도 계속 하고 있는 것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