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 화재때 불씨 되살아나 아찔 전문가 “수직형 구조서 굴뚝 역할” 강남 아파트 불나 주민 40명 대피 에어컨 수리 용접작업중 화재 추정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아파트 10층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대원들이 진화 작업을 하고 있다. 경찰은 화재 현장에서 화상을 입은 에어컨 기사로부터 “용접을 하던 중 인근 물체에 불이 붙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하고 정확한 원인 등을 조사 중이다. 뉴시스
19일 서울 양천구 목동의 23층짜리 주상복합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는 꺼진 줄 알았던 불이 다시 확산하면서 진화에 12시간이나 걸렸다. 특히 불길이 한 번 잡힌 이후에도 건물 내 환풍구를 통해 다시 불길이 살아났던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고층 건물에 주로 설치되는 수직형 구조의 환풍구가 불씨를 빠른 속도로 이동시키는 ‘굴뚝’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환풍구 입구 주변에 자동 개폐 장치를 설치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소방청에 따르면 19일 아파트 지하 2층 재활용 수거장에서 발생한 화재는 약 50분 만인 오전 8시 48분경 불길이 잡혔다. 그러나 약 1시간 40분 후인 오전 10시 25분경 최초 발화 지점 바로 위층인 지하 1층 체육관 천장에서 화점이 또 발견되며 재확산됐고, 약 12시간이 지나서야 완진됐다. 소방당국과 경찰은 재활용 수거장 인근의 수직형 환풍구를 타고 불씨가 위층까지 이동한 것으로 추정하고 정확한 원인 등을 조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건물에 설치된 수직형 환풍구에 ‘굴뚝 효과’가 발생해 불씨가 더욱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고 분석했다. 굴뚝 효과란 건축물 내부와 외부 간 온도·밀도 차로 인해 따뜻한 공기가 빠르게 상승하는 현상을 뜻한다. 굴뚝 효과 발생 시 연기 확산 속도는 초당 3∼5m까지 올라간다. 수평으로 이동하거나(초당 0.5∼1m) 외벽에 둘러싸이지 않은 채 수직으로 이동하는 경우(초당 2∼3m)보다 2배 이상 빠른 것이다.
2021년 개정된 ‘건축물의 피난·방화구조 등의 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환풍구의 배관 통로가 방화구획을 통과할 경우 연기나 불꽃을 감지해 자동으로 차단하는 ‘방화 댐퍼’를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이 건물은 1999년에 완공돼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었다. 백승주 열린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대형 건물에는 자동으로 연기를 감지할 수 있는 댐퍼로 교체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20일에도 서울 도심 주택가에서 큰불이 나 주민 40여 명이 대피하고 3명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22분경 서울 강남구 역삼동 16층짜리 아파트 10층에서 불이 나 약 3시간 만인 오후 4시 36분경에 꺼졌다. 이 화재로 주민 40여 명이 대피했다. 또 발화 지점 인근에서 작업 중이던 에어컨 기사 김모 씨(51)가 얼굴 화상 등으로 병원에 실려 갔으며, 생후 11개월 남아와 생후 5개월 남아도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다.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에어컨 수리를 위해 용접 작업을 하던 중 인근에 있던 물체에 불이 붙은 것으로 기억한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21일 오전 10시 합동감식을 실시하고 정확한 원인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임재혁 기자 he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