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반도체 설계 대중화 꿈꾸는 잇다반도체 제작공정 지식 SW에 담아 자동화… 연 단위 사전 협업시간 감축 가능 전력소비 관리 파워시스템 상용화… 효율적인 칩 구조 생성할 수 있어 최소 인력-즉시 설계가 최종 목표… “반도체 설계 패러다임 바꾸겠다
전호연 잇다반도체 대표이사가 17일 경기 화성시 동탄신도시 사무실에서 자사 반도체 설계 솔루션의 장점을 설명하고 있다. 반도체 공정 지식이나 회로 설계용 코딩 지식을 모르더라도 빠른 시간 안에 설계를 마칠 수 있다고 전 대표는 강조했다. 화성=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반도체 칩에 대한 관심이 인류사에서 지금처럼 뜨거운 때가 있나 싶다. 인공지능(AI) 칩을 설계하는 엔비디아는 세상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기업 자리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자동차에서 자율주행 기능을 맡는 칩, 모바일 기기를 구동하는 칩에 대한 수요도 점점 늘고 있다.
삼성전자에서 테슬라 자율주행 칩 등 다양한 시스템반도체를 16년 동안 설계한 경험이 있는 전호연 대표(44)는 2022년 ‘잇다반도체’를 설립했다. 삼성전자 출신 동료 2명과 함께한 공동창업이다. 칩 설계 업무를 하면서 설계 과정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겠다 싶어서 한 도전이다. 경기 화성시 동탄역 인근 화성사이언스허브의 사무실에서 17일 만난 전 대표는 “시스템반도체 설계를 하려면 여러 부서와 엔지니어의 협업이 필요해 최소 1년은 걸린다. 우리는 그 시간을 1주일로 줄일 것이다”고 했다.
● 시스템반도체 설계 업무의 ‘보틀넥’
전 대표는 “대학에서 반도체 설계를 배워도 삼성전자 같은 반도체 회사에 입사하면 업무를 하면서 배워야 하는 게 너무 많다. 예컨대 모든 반도체 구동에 필수적인 전력 관리 부분 설계는 대학에서는 거의 배우지 못한다”고 했다. 반도체 인력이 모자란다고 대학 정원을 늘려도 기대했던 것만큼 빠르게 국가의 반도체 설계 능력이 좋아지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전 대표는 이를 반도체 설계 업무의 보틀넥(병목 현상)으로 봤다. 그는 “시스템반도체 회로 코딩 전에 여러 전문가가 협의하는 데만 연 단위 시간이 필요하다”며 “제작 공정에 필요한 배경 지식을 소프트웨어에 담아 자동화하면 이 시간을 거의 없앨 수 있다”고 했다.
시스템반도체 설계는 신도시 설계에 비유되곤 한다. 신도시에 상주할 인구에 맞춰 주택과 교통, 업무시설 등을 효율적인 위치와 동선을 고려해 설계하는 식이다.
잇다반도체는 신도시가 감당해야 할 기능에 대한 핵심적인 설계안만 있으면 인프라에 가까운 설비들은 소프트웨어가 자동으로 설계해 준다. 신도시에 필요한 전력량과 전력망, 상하수도 용량과 배선 등이 자동으로 생성되는 것과 비슷하다. 시스템반도체 설계를 하면서 쌓은 경험과 지식을 자동화 소프트웨어에 내재화한 것이다.
잇다반도체는 반도체 설계 전공자가 회사에 입사해서 시스템반도체를 최소의 인력으로 바로 설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전 대표는 “반도체 설계 업무 경험이 있는 실무자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좀 더 간편하게 구현할 수 있는 도구가 생기는 것이어서 더 창의적인 시도를 해볼 수 있다”고 했다.
잇다반도체의 솔루션은 사용자가 드래그&드롭 방식으로 자동화 소프트웨어 내에 지정된 아이콘을 끌어다 놓고 필요한 프로그램 모듈을 지정하기만 하면 된다. 기존 방식이라면 전문가들은 협의를 한 뒤 확정된 세부 사항을 문서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런 문서화 작업도 자동으로 해준다.
잇다반도체는 설립 2년도 채 안 돼 파워(Power)시스템과 클록(Clock)시스템 설계 등을 자동화해 상용화했다. 파워시스템은 칩이 효율적으로 전력을 사용하고 관리할 수 있게 해준다. 전력 소비를 최소화하는 저전력 설계 기법이 적용되고, 칩 내부에 전력이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설계해야 한다. 클록시스템은 칩 성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다. 칩 내부 모든 동작이 동기화돼 일어날 수 있도록 칩 동작 속도나 메모리 대역폭 등을 고려해 설계해야 한다.
전 대표는 “파워와 클록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는 전문가는 세계적으로 숫자가 줄고 있는 반면 AI의 확산으로 칩 전력 소비를 줄이는 설계 수요는 크게 늘고 있다”며 “파워와 클록시스템 설계 자동화만으로도 수천억 원 규모의 글로벌 시장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했다. 글로벌테크 기업들은 성능(performance)뿐만 아니라 소비전력을 줄이기 위해 많은 인력과 돈을 들이고 있다고도 했다.
전 대표는 “우리 솔루션에는 공동창업자들이 그간 쌓아 둔 경험이 녹아 있어 그림으로 설계를 하면 최적의 반도체 구조가 나오도록 돼 있다”며 “단순히 설계 시간만 줄이는 것이 아니라 효율 좋은 설계 구조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잇다반도체의 다음 계획은 파워시스템과 클록시스템을 포함해 총 10여 개 설계 부문을 자동화해 시스템반도체 노코딩 솔루션인 ‘SoC 캔버스’를 만드는 것이다. 현재 칩의 결함을 테스트할 수 있는 체계(DFT·Design for Test)를 자동화하는 중이다. 설계된 칩의 결함을 자동으로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기존에는 전문가가 매달려 칩 사양에 따라 일일이 코딩 작업을 해야 했다. 전 대표는 “어려운 부문인 파워와 클록시스템 설계 자동화를 이미 완성했기 때문에 나머지 8개 부문은 2∼3년 내에 마무리될 것”이라고 했다.
잇다반도체는 칩 설계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인정 받아 최근 중소벤처기업부 ‘초격차 스타트업 1000+’에 선정되기도 했다.
● 삼성전자 출신 3명이 공동창업
잇다반도체는 삼성전자에서 시스템반도체와 설계 자동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던 인력들이 나와 창업했다. 전 대표는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전자·컴퓨터 전공으로 학사를 받고, KAIST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 개발 분야에서 16년간 경험을 쌓았다. 테슬라의 자율주행 칩과 갤럭시폰 및 아이폰 칩 등의 파워시스템을 설계했다.
김아찬 최고기술책임자(CTO)는 KAIST에서 전자공학으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고, 삼성전자에서 갤럭시폰의 파워시스템과 구글폰의 클록시스템 설계 등으로 10년 동안 경험을 쌓았다. 김인규 최고제품책임자(CPO)는 성균관대 반도체공학과를 나와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지적자산(IP) 및 시스템반도체 사양 설계, 자동화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 등에서 8년간 일했다.
전 대표는 “테슬라나 구글의 칩 개발에 참여하면서 글로벌 테크 기업이 원하는 수준도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고 했다.
창업 동기에 대해서는 “시스템반도체 설계 과정에 있는 비효율을 제거하고 싶다는 생각과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욕구가 겹쳤다”고 했다. 그는 “칩 설계는 매번 비슷한 과정을 거치는데 칩이 요구하는 사양이 달라질 때마다 비슷한 작업을 오랜 시간에 걸쳐 하는 게 너무나 비효율적으로 보였다”고 했다. 파워시스템을 설계하는 전문가가 많지 않아 만약 사업에 실패하더라도 다시 취업을 하는 데는 문제가 없겠다는 ‘마지노선’도 생각해 봤다고 했다. 창업을 위해 KAIST 경영대학원을 다녔다.
전 대표는 “업계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미국의 반도체 설계 회사 전문가들과도 소통하는데, 반도체 설계 방식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우리 솔루션에 관심이 많았다”며 “미국 등으로 곧 진출할 계획”이라고 했다.
화성=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