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다음으로 지능 높은 동물… 평생 독방 같은 수조에 가둔 채 시키는 대로 안 하면 굶기기도… 2010년 ‘조련사 살인 사건’ 발생 비윤리적 사육 환경 사회문제돼… “초대형 우리 만들어 보호해야” ◇슬픈 수족관/존 하그로브 외 지음·오필선 옮김/400쪽·2만5000원·목수책방
범고래는 두뇌의 큰 신피질과 고도의 사회적 행동을 갖춘 지능적 동물이며 다양한 감정을 표현한다. ‘슬픈 수족관’의 저자인 존 하그로브는 작은 수족관에 갇힌 범고래들에게 자연의 바다와 흡사한 환경을 제공하고 보호해 주어야 한다고 호소한다. 미국 유명 해양 테마파크 ‘시월드’에 재직하며 범고래와 함께하던 시절의 저자. 목수책방 제공
어느 날 외계인이 당신을 납치해 자신들의 행성으로 데려간다. 독방에 갇힌 당신은 매일 쇼를 하는 대가로 음식을 얻어먹는다. 어떤 기분일까. 저자에 따르면 이것이 바로 미국 유명 해양 테마파크 ‘시월드’에 갇힌 범고래들에게 닥친 일이다.
저자는 여섯 살 때 시월드에서 본 범고래 쇼에 매혹돼 범고래 조련사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결국 소원을 달성한 그는 시월드가 소유한 범고래 30마리 중 20마리와 공연한 베테랑 조련사가 됐다.
범고래는 인간 다음으로 높은 지능을 가졌다고 알려진 동물 중 하나다. 야생의 바다에서 그들은 고도의 사회적 행동을 보이며 그들만의 언어도 있다. 저자는 “범고래가 내 눈을 바라볼 때마다 반짝이는 지능과 감정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들은 관심을 갈구하고 질투를 느끼며 트집도 잡는다. 조련사나 동족 중 일부를 편애하고 때로는 적대시한다. 실수를 하면 미안해하기도 했다.
저자는 범고래 사육의 비윤리적 환경이 그들의 일탈을 낳는다고 말한다. 시월드는 올림픽 수영장 열 개 크기의 거대한 수조를 홍보하지만 바다를 누비던 범고래들에게는 감옥의 독방이나 마찬가지다. 말을 듣지 않으면 음식을 주지 않는 것도 감옥 시스템을 연상케 한다. 그들만의 사회적 제동장치가 없고 일상이 스트레스로 가득 찬 인공의 환경에서 범고래는 폭력적 성향을 보이기 쉽다. 저자 자신도 범고래에게 잡혀 수조 깊은 곳으로 끌려갈 뻔한 여러 차례의 아찔한 순간을 회상한다.
부상의 누적으로 입사 19년 만인 2012년 시월드를 퇴직한 저자는 전직 조련사들이 쓴 시월드 비판 논문을 알고 처음엔 화가 났다고 고백한다. 범고래들이 처한 환경에 대해 경영진과 싸웠어도 그곳에 대한 애정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논문을 읽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거기엔 진실이 담겨 있었다. 1970년대 범고래 포획이 중단된 뒤 시월드는 인공수정으로 번식된 범고래들을 팔아 돈을 벌었지만 범고래들을 위한 시설 개선은 없었다. 조련사들의 죽음과 부상 등 사고에 대해서는 ‘그들 자신의 실수’로 몰아갔다.
저자는 틸리쿰 사건과 범고래의 비참한 환경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블랙피시’(2013년)에 참여했고 이 영화는 영국 아카데미(BAFTA)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후보에 오르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금과 같은 환경을 지속할 수 없다면 테마파크에 갇힌 범고래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야생성을 잃은 범고래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노하우를 가진 시월드뿐이다. 세계 여러 테마파크의 독방에 갇힌 범고래를 시월드가 모아 거대한 ‘바다 우리’를 만든 뒤 보살펴야 한다고 저자는 제안한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