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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실 맥주, 매실 한과… 왕매실이 바꾼 농촌 마을[전승훈의 아트로드]

입력 | 2024-06-23 14:00:00

팜타스틱한 농촌으로
당진 왕매실마을, 백석올미마을




충남 당진시 순성면에는 아미산 앞으로 남원천이 흐른다. 남원천변 논두렁엔 2002년부터 재경 향우회에서 앞장서 ‘고향사랑 나무심기 운동’을 벌었다. 그 때 심은 왕매실나무는 10만 그루가 넘게 자랐다.


순성면 왕매실마을과 백석올미마을 사람들은 엄청나게 생산되는 매실을 어떻게 이용할까 고민했다. 처음엔 그냥 생매실이나 매실청, 매실엑기스만 생산해 팔았다. 그런데 매실청을 넣은 맥주, 막걸리, 한과는 이 마을을 전국적 명성을 얻도록 만들었다.





왕매실마을

충남 당진에는 성 김대건 신부가 살았던 솔뫼성지, 신리성지, 합덕성당 등 천주교 성지가 많습니다. 그래서 천주교 신자들이 성지순례 코스로 많이 찾는다. 그런가하면 면천 두견주, 순성브루어리, 신평양조장장 등 다양한 전통주와 지역 양조장도 많아 젊은이들의 ‘성지술례’ 장소로도 인기다.


순성면 왕매실마을에 있는 ‘순성브루어리’는 당진에서 유일한 수제 생맥주를 만드는 양조장이다. 순성브루어리 1층에는 이 곳에서 만들어내는 당진 최초의 수제맥주와 매실 막걸리 ‘매화꽃비’, BTS팬들이 대량구입했다는 ‘아미주(峨嵋酒)’를 구입할 수 있다.


이 곳에서는 나만의 매실청을 넣은 수제맥주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 2층에 올라가면 바비큐와 매실 피자를 안주로 다양한 맛의 맥주를 시음해볼 수 있는 펍이 있다. 시골에서 볼 수 없는 세련된 인테리어로 실내가 꾸며져 있다. 대형유리창을 통해 내려다본 브루어리에는 맥주를 담는 양조 시설이 놓여져 있다. ‘탄생! 당진 최초의 Craft Beer’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왕매실마을 검은돌도농교류센터에서는 숙박도 할 수 있다. 가족 휴양객들이 와서 아이들과 함께 매실을 따고, 매실엿과 매실피자 만들기, 맥주 부산물로 비누만들기 등을 체험한다. 체험비는 1만~1만5000원. 아이들이 3~4가지 체험을 하는 동안, 부모들은 2층 펍에서 매실을 넣은 맥주, 막걸리를 만들고 시음하며 하루를 즐길 수 있다.

이 곳에서 4가지 종류의 수제맥주를 시음해보았다. 백석바이젠(화이트맥주), 아미페일에일(아미산이름을 딴 에일맥주), 솔뫼IPA(솔뫼 성지 이름을 딴 맥주), 검은돌 스타우트(흑맥주) 등 당진의 역사와 명소, 산 이름과 지명을 활용한 맥주들이었다. 맥주를 담는 과정에 매실청을 넣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뒷맛에 매실청 향이 살짝 느껴진다.
“맥주에도 공정과정에 일정량의 설탕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여기가 왕매실 영농조합이기 때문에 설탕비율을 줄이고 매실청을 넣었습니다. 소량이지만 설탕의 비율을 줄이고, 매실청으로 단맛을 내는 것입니다.”


순성브루어리 백운기 공동대표는 서울에서 교육 IT업계에서 일을 하다가 고향으로 내려와 브루어리 사업을 이끌고 있다.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매실이 들어간 맥주, 막걸리 등을 담게 된 계기는.
“순성면에는 아미산을 배후로 남원천이 흐르거든요. 남원천변 논두렁에 2002년부터 재경 향우회 분들이 ‘고향사랑 나무심기 운동’을 벌였어요. 그때 왕매실나무를 심어서 순성면 일대에는 왕매실나무가 10만 그루가 넘게 자라게 됐습니다. 2006년부터 영농조합법인을 세워 매실을 수확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영농조합에서 생매실로 많이 팔았고 청을 담아서 팔기도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뭐할까 하다가 원래 이 곳에 막걸리 공장이 있었거든요. 매실청이 들어간 막걸리를 생산하기 시작했죠. 그 막걸리를 증류한 게 ‘아미주’입니다.”


왕매실마을에서는 매실청으로 막걸리와 맥주를 담는 영농조합과 함께 농촌체험휴양마을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매실을 수확하는 6~7월에는 매실 따기, 매실청 만들기, 매실장아찌, 매실잼 만들기 등을 위주로 이루어진다. 지난해에는 약 7000명 정도의 체험객이 마을을 방문했다고 한다.


―체험객들은 주로 어떤 분들이 오나요.
“술 만들기 체험이 많으니까 가족단위 관람객이 별로 없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런데 그래서 더 가족단위 체험객이 많이 올 수도 있어요. 여기서 숙박하시는 분들의 경우엔 아이들에게 매실 피자, 한과 만들기 등 체험프로그램 서너 개를 신청해서 5시간 정도를 신나게 체험하게 하고, 부모님들은 맥주시음장에서 함께 온 사람들끼리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여기서 단골로 오셨던 젊은 커플이 이 곳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어요. 동네에서 마련한 술과 음식으로 피로연 잔치를 했습니다.”


―맥주 브루어리를 하게 된 이유는.
“농촌의 영농조합법인은 대부분 장년층이 운영하고,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제품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고, 주 소비층도 바뀌어가는 데 뭔가 좀 젊은 세대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제품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맥주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술에 매실청을 넣으면 좋은 점은.
“발효가 다 끝난 매실청은 약과 같습니다. 항균 작용도 있고, 소화를 돕는 좋은 성분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술로 인해서 생기는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조금은 보완해줄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밤에 응급으로 약이 없을 때 매실청을 찬물에 타서 마시면 아주 좋아요. 여름철 땀 많이 나고, 힘들고 어려울 때 매실을 타서 마시면 수분이 부족한 현상들을 많이 보완해준답니다.”


―순성 브루어리의 디자인이 참 좋은 것 같아요. 이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원래 서울에서 교육 IT사업을 했습니다. 일본의 사가현의 공립고등학교에 교육 시스템을 납품했어요. 약 5년 정도 일본을 오가며 일을 했어요. 한적힌 시골마을이었는데, 식사를 할 때마다 그 지역 고유의 술이 다양하게 나오곤 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올 때는 그 지역의 유명한 특산물로 만든 빵이나 토산품 오미야게를 하나씩 사갖고 오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다 서울에서 양산하는 술들이 지방까지 점유하고 있고, 지역 특산품이나 술 문화는 부족한 것 같았습니다. 저의 선조가 1950년대부터 양조장을 하셨으니까 술부터 한번 시도해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매화 꽃비’는 매실 막걸리다. 봄에 매화가 비처럼 내리는 모양을 표현한 디자인도 세련됐다. 100% 당진쌀과 순성왕매실로 맛을 낸 막걸리다. 이를 증류해서 만든 40도짜리 증류주가 ‘아미주’다.



―아미주는 어떤 술인가요.
“당진에 있는 아미산에서 이름을 따와서 만든 증류주입니다. 그런데 BTS의 팬클럽 ‘아미’와 발음이 같아서 BTS팬들에게 인기가 있는 술입니다. 유재석이 유튜브 채널에서 초대손님으로 나온 BTS 멤버 슈가와 지민에게 ‘아미주’를 선물해준 것을 계기로 유명해졌습니다. 제작진들이 직접 인터넷으로 구매해서 선물했다고 하네요. 저희는 사전에 몰랐는데, 많은 팬들이 갑자기 주문이 쇄도해 놀란 적이 있습니다.“



‘할매들의 반란’ 백석올미마을

왕매실마을 옆에 있는 순성면 백석올미마을에 들어가면 ‘할매들의 반란!’이라는 문구가 입구에 써 있다. 글자 옆에는 꽃이 달린 모자를 쓰고, 울긋불긋한 색깔의 몸빼바지를 입은 할머니 캐릭터가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다. 할매 캐릭터는 옆에 왕매실이 들어 있는 바구니를 끼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백석올미마을은 김금순 할머니(75)가 여름이면 엄청나게 열리는 왕매실로 담은 매실청으로 과즐(한과)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한다. 평균나이 75세인 할매들이 만드는 매실청, 매실장아찌, 매실한과는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서 대통령이 보내는 명절선물에도 선정되기도 했다.


2011년 마을 부녀회 33명이 참가하는 영농조합법인으로 출발한 백석올미마을은 현재 매출 10억원 이상, 80명의 조합원을 가진 마을기업, 사회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백석올미마을에서는 체험장이 잘 구비돼 있다. 한과와 조청, 장아찌, 매실청을 생산하는 공장에는 위생시설 때문에 일반인이 들어갈 수 없지만, 체험장에는 매일 단체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체험장에서는 매실을 넣은 한과, 초콜릿, 장아찌, 고추장 담기 뿐 아니라 천연비누, 양초, 전통 서각, 한지공예 등 공예체험도 할 수 있다.

이 마을에서 받은 인상은 할매들의 스토리텔링을 활용한 다양한 캐릭터와 디자인, 브랜딩과 마케팅, 전자상거래를 활용한 판로개척 등이 매우 세련됐다는 점이다. 할매들이 마을을 바꿔보겠다는 열정과 함께 젊은이들의 디자인 감각이 돋보이는 마을이다.


당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