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와 폐허 1·2/리처드 오버리 지음·이재만 옮김/1474쪽·7만6000원(2권)·책과함께
제2차 세계대전만큼 학계에서 깊이 있게 연구된 분야는 별로 없다. 20세기 냉전을 거쳐 21세기 미중 패권시대에 이르기까지 세계 질서를 형성한 핵심 동인이 2차대전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관련 학술서들이 나왔지만 이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서사는 ‘선한 연합국 vs 탐욕의 추축국’이란 대립 구도다. 이들 진영 간의 패권 경쟁과 이데올로기 갈등 등이 대전으로 치달았다는 것이다.
영국의 원로 현대사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 전통적 견해와 결이 다른 수정주의 시각을 담았다. 2차대전을 이미 식민지를 거느린 기존 ‘영토 제국’과, 이 대열에 끼기 위해 도전한 신흥국들 사이의 ‘제국주의 전쟁’으로 규정한 것. 이 구도로 보면 식민지에서 고혈을 짜내 막대한 부를 축적한 당시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도 전쟁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군인뿐 아니라 2차대전을 맞은 당시 민간인들의 경험이나 감정, 심리 등을 깊이 있게 분석한 내용도 눈길을 끈다.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민간인을 일종의 군인으로 간주하는 전쟁의 ‘민간화’가 이례적으로 벌어졌다는 것이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