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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 만에 상봉한 형제의 넋… 추모의 불꽃 꺼지지 않으리

입력 | 2024-06-24 03:00:00

6·25전쟁서 전사한 ‘호국 형제’… 형 유해 수습해 이달 안장식
“그들의 희생 없이 우리도 없다”
미귀환 국군 전사자 12만 여명… 일상서 호국보훈의 가치 새겨야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상이군경회 서울 송파지회 소속 국가 유공자들이 3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목숨을 바친 전우들의 묘역 비석을 닦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이달 5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는 국군 용사 형제가 75년 만에 넋으로 상봉했다. 6·25전쟁에서 전사한 형 전병섭 하사(현 계급 상병)의 유해를 먼저 묻힌 동생 전병화 이등상사(중사)의 묘역에 함께 안장하는 ‘호국의 형제’ 안장식이 거행된 것. 전 하사 형제는 6·25 주요 격전지에서 공산군에 맞서 싸우다 3개월 차이로 전사했다. 이들의 숭고한 희생은 호국보훈의 가치를 절감하게 한다.



3개월 사이 전사한 형제, 75년 만에 넋으로 상봉

1925년 경기 고양군(현 서울 성동구)에서 4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전 하사는 6·25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10월 자진 입대했다. 이후 국군 8사단에 배치돼 1951년 2월 ‘횡성 전투’와 그해 4월 ‘호남지구 토벌 작전’에서 북한군 소탕 임무에 나섰다.

이어 1951년 8월 강원 인제로 이동한 뒤엔 중·동부 전선을 사수하기 위해 북한군과 격전을 펼치다 ‘노전평 전투’에서 26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고인의 유해는 2021년 6월 강원 인제군 고성재 일대에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의해 수습됐다. 2023년 11월에 신원이 최종 확인됐다.

동생인 전 이등상사는 삼남으로 태어나 1949년 7월에 입대했다. 이후 6·25가 터지자 국군수도사단 소속으로 1950년 6월 ‘한강 방어선 전투’와 10월 ‘원산 진격전’에 참전했다.

이후 1951년 11월 강원 고성으로 이동해 ‘월비산 전투’에 참전했다가 20세의 꽃다운 나이로 산화했다. 고인에게는 화랑무공훈장이 수여됐고, 그의 유해는 전쟁 직후 수습돼 1959년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두 형제의 사후 상봉은 차남 전병철 씨(2014년 작고)의 애틋한 형제애 덕분이었다. 형과 동생을 따라 1950년 12월 입대해 일등중사(현 계급 하사)로 만기 전역한 전 씨는 형제들을 찾기 위해 2011년 군 유해감식단에 유전자(DNA) 시료를 제출했다. 이것이 맏형인 전 하사 유해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 결정적 단서가 된 것이다.

아직도 귀환하지 못한 국군 전사자는 12만여 명에 달한다. 오랜 세월 산하 곳곳에 묻혀 있는 호국영웅들을 마지막 한 분까지 가족의 품으로 모시고 기억하는 것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책무다.

더욱이 북한이 핵·미사일 위협을 날로 고도화하면서 대규모 ‘오물풍선’ 테러 등 갖은 도발을 획책하는 엄중한 안보 상황에서 맞는 호국보훈의 달은 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북한의 도발 위협에 맞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영토를 지키기 위해 1년 365일 24시간 구슬땀을 흘리는 국군 장병들의 헌신을 기억하고 응원하는 것도 보훈의 시작일 것이다.



“호국보훈의 가치 일상에서 살아 숨 쉬어야”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15년 태평양전쟁 종전 70주년 기념식에서 “2차 대전에 참전한 미군 장병들에게 우린 결코 갚을 수 없는 감사의 빚을 지고 있다”며 “우리는 그들의 용기 덕분에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별한 달이나 기념일뿐만이 아니라 호국보훈의 가치가 일상에서 살아 숨 쉬도록 하는 국가사회적 분위기가 절실하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들 유족의 심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제2연평해전과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전에서 산화한 55용사를 기리는 ‘서해 수호의 날’(매년 3월 넷째 주 금요일)처럼 매년 특정일에 호국영웅을 추모하는 행사가 열리지만 국민의 일상과 괴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일부 몰지각한 정치인은 정쟁에 빠져서 북한의 도발로 중상을 당한 장병을 비하하고, 그 가족들의 상처를 헤집는 망언을 하다 지탄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일각에선 호국보훈이 일상 속으로 녹아들 수 있는 추모 시설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민국의 상징이자 서울의 심장부인 광화문광장 등에 꺼지지 않는 불꽃과 같은 추모 시설 건립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웅들의 불꽃 같은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와 대한민국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 ‘그들’이 곧 ‘우리’라는 국민적 공감대를 확산시키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미국 등 보훈 선진국에서는 그런 시설이 명소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미국 워싱턴 알링턴 국립묘지의 ‘영원한 불꽃’, 프랑스 파리 개선문 광장의 ‘추모의 불꽃’이 대표적 사례다.

병무청이 지난해 8월부터 시작한 ‘나라사랑 가게’ 사업도 일상 속 보훈의 좋은 사례다.

이 사업은 병역을 성실히 이행하거나 이행 중인 사람들에게 ‘상품(서비스) 가격 할인’ 등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혜택을 제공해 병역 이행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내용이다. 병역 이행자 예우를 위해 시작한 이 사업에 참여한 업체는 지난달 말 기준 1136개다. 매달 참여 업체가 급증하는 추세다.

안경점을 비롯해 병원, 미용실, 카페, 전자제품 유통점, 식당, 테마파크, 휴양림 등으로 다양하다. 할인율은 업체가 자율적으로 정하는데 5%에서 50%에 달한다. ‘나라사랑 가게’에 참여하는 업체는 병무청 홈페이지에서도 일일이 찾아서 들어가야 하는 페이지에 그 목록이 게재되는 것 외에 어떤 혜택도 없다. 순수하게 선의로 참여하는 셈이다.


윤상호 ysh1005@donga.com·손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