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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주의-경쟁 심화로 잃어버린 삶의 의미, 종교로 되찾을 수 있어”… 북달 랍비 인터뷰

입력 | 2024-06-22 14:23:00

아시아 여성 최초 뉴욕 센트럴시나고그 수석 랍비 내한




“많은 전쟁을 치른 이스라엘의 행복 지수가 높고, 출산율 또한 높은 이유는 종교 덕분입니다. 종교는 공동체를 형성하고 사람들에게 소속감을 주며 외로움 또한 치유합니다. 인간의 삶에는 종교가 꼭 필요합니다.”

미국과 캐나다를 합한 북미 지역에서 아시아계 여성 최초로 뉴욕 최대 유대교회당(시너고그)의 수석 랍비가 된 앤젤라 워닉 북달(52)의 말이다. 한국계 어머니와 유대계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2011년 시사매체 뉴스위크가 선정한 ‘미국서 가장 영향력 있는 랍비’에 꼽혔다.

또 2014년 세계 3대 유대교 회당인 뉴욕 센트럴 시나고그에서 최초의 여성 및 아시아계 수석 랍비로 임명돼 주목받았다. 같은 해 버락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 초청으로 백악관에서 열린 유대계 축제 ‘하누카’에서도 기도했다.

그는 최근 서울대에 개설된 이스라엘 교육연구센터 개소식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했다. 18일 영등포구 여의도동 콘래드호텔에서 만난 북달 랍비는 “물질주의, 경쟁 심화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과 우울함을 느끼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종교가 잃어버린 삶의 의미를 되찾아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1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콘래드호텔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는 북미 지역의 첫 아시아계 및 여성 수석 랍비 앤젤라 워닉 북달.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한국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유대교, 어머니는 불교 신자라고 들었다.

“부모님 덕분에 한국인 겸 유대인의 정체성을 모두 지킬 수 있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5살 때 미국에 왔는데 어머니는 내가 빨리 미국 사회에 적응하고 공동체에 소속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나고그에 가는 것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셨다.

나는 유대교인이지만 불교 신자인 어머니로부터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불교는 아시아에서 ‘종교’를 넘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자 삶의 철학 아니겠나. 어머니께서 어렸을 때부터 불교 철학이 녹아 있는 민담 같은 것을 많이 들려주셨고 생명의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고 늘 강조하셨다. 불교, 유교의 가치가 모두 나의 정체성에 녹아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 후 통기타를 치며 전통 민요 ‘아리랑’도 구성지게 불렀다.

-북미 지역에서 여성, 아시아계 최초로 수석 랍비가 돼서 화제가 됐다. 아시아 혼혈이라서, 여성이라서 겪은 어려움은 없었나?

“많이 어려웠다. 유대인들은 전세계에 퍼져있지만 당시 미국에 있는 거의 모든 유대인들은 유럽 출신 백인이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주변에서 ‘진짜 유대계가 맞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

게다가 유대교의 역사는 4000년이 됐지만, 여성 랍비가 나타난 지는 반세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만큼 유대교 자체에 가부장적 분위기가 남아있고,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미국 자체에도 인종차별, 성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중고를 겪었다.

우리 유대회당이 나를 수석 랍비에 자리에 앉힌 것도 어찌 보면 위험을 감수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나를 ‘아시아계’나 ‘여성’이 아닌 그냥 ‘랍비 앤젤라’로 본다.”


1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콘래드호텔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는 북미 지역의 첫 아시아계 및 여성 수석 랍비 앤젤라 워닉 북달.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최근에는 아시아계 랍비 혹은 여성 랍비가 늘었나?

“지금도 많지 않다. 북미 지역에선 아마 한 손 안에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유대교 신자의 인종적 다양성은 확대됐다. 내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만 해도 다른 인종들은 유대교 회당에서 그닥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지금은 유대교 전체가 다양한 인종에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다.”

-부모님은 랍비가 되는 것을 지지하셨나.

“16살 때 처음 ‘랍비가 되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고생이 심할 것이라고 걱정하셨지만 딸의 선택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셨고 지금은 매우 자랑스러워하신다. 유대계인 남편 또한 나의 일을 지지하고 도와준다. 우리는 세 아이를 두었기 때문에 남편의 협조가 없으면 ‘워킹맘’ 생활이 불가능하다(웃음).”

-종교를 막론하고 전세계적으로 각 종교의 신자가 줄고 있다.

“물질주의, 경쟁 심화 등으로 인간의 삶에서 정신적인 부분이 과소평가되고 있다. 동시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과 우울함을 느끼고, 극단적 선택을 한다. 그래서 바로 이 지점에서 종교가 꼭 필요하다. 종교는 단지 교리를 넘어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사람들에게 소속감을 주고 외로움을 치유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잃어버린 삶의 의미를 되찾아줄 수 있다.

이스라엘은 많은 전쟁을 치러왔음에도 불구하고 행복지수가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들 중 하나다. 출산율도 굉장이 높은데, 그 비결도 단연 종교다. 유대인들은 매주 금요일마다 안식일(샤밧) 저녁을 가족과 함께 한다. 종교를 통해 가족간 유대감을 강화하는 것이 행복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한국의 출생률이 너무 낮아 놀랐다. 한국인들이 열심히 일하는 데도 아이를 낳고 키우는 비용이 많이 들어 그렇다고 들었다. 이스라엘의 합계 출생률은 3명이 넘는다. 높은 출생률에도 종교의 영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이 장기화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생존을 위해서 자신을 지킬 권리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 사람도 존엄을 지키며 살 권리가 있다. 양측 모두의 안전과 존엄성이 보장되기를 바란다.”

● 이스라엘 교육연구센터, 양국 교류 주춧돌 기대

-서울대에 개설된 이스라엘 교육연구센터 개소식에 참여하기 위해 내한했다.


“유대교와 히브리어는 기독교를 포함해 전세계 많은 종교와 언어에 영향을 준 고대 문명이다. 한국처럼 교육 수준이 높은 나라에서 그간 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이 없어 늘 아쉬웠다. 교육, 문화, 창업, 정보기술(IT)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양국 학자와 시민들이 교류할 수 있는 주춧돌로 자리할 것이다. ”

1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서울대 이스라엘교육연구센터 개소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는 아키바 토르 주한 이스라엘 대사. 토르 대사는 “이스라엘 주요 대학에서는 한국어, 역사, 사회를 폭넓게 공부할 수 있는 교육 과정이 개설돼 있는데 한국에서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할 곳이 적어 늘 아쉬웠다”며 “이번 센터를 통해 앞으로 한국에서도 히브리어, 유대인의 역사와 사회, 현대 이스라엘의 정치경제 체제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주한이스라엘대사관 제공.



-양국간 교류가 왜 중요한가.

“유대인과 한국인은 모두 교육열이 굉장히 높다. 여러 차례 외세의 침략을 당한 역사 또한 비슷하고, 천연자원이 부족한 것도 같다. 자신들의 문화, 언어, 지식 등을 적극적으로 지켜야 민족과 국가가 유지되기에 교육에 더 매달렸던 것 같다.

1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서울대 이스라엘교육연구센터 개소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는 아키바 토르 주한 이스라엘 대사. 토르 대사는 “이스라엘 주요 대학에서는 한국어, 역사, 사회를 폭넓게 공부할 수 있는 교육 과정이 개설돼 있는데 한국에서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할 곳이 적어 늘 아쉬웠다”며 “이번 센터를 통해 앞으로 한국에서도 히브리어, 유대인의 역사와 사회, 현대 이스라엘의 정치경제 체제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주한이스라엘대사관 제공.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한국은 아직 토론 문화가 활성화되진 않았다고 본다. 윗사람에게 반박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풍습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것으로 알고 있다. 반면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공부법인 ‘하브루타’(Havruta)는 ‘토론’ 그 자체다. 어릴 때부터 가정, 학교, 사회에서 서로 질문을 주고받고 토론을 한다. 유대인들이 나와 비슷한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이유도 토론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단기간 내에 많은 지식을 익힐 수 있는 한국식 교육과 하브루타가 합쳐지면 상당한 시너지가 있을 것이다.”






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