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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성공해 교수직 퇴직했더니 집안의 수치 취급

입력 | 2024-06-23 09:33:00

[돈의 심리] 돈 벌어 인정받을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가 신분제 사회보다 긍정적




현대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다. 자본주의 사회의 폐해 중 하나는 사람들이 돈을 굉장히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사회에서 중요한 가치는 굉장히 많다. 학문도 중요하고 예술도 중요하다. 개인의 인격과 도덕적 가치도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 모든 것이 돈으로 치환된다. 돈을 많이 벌면 좋다고 생각하고, 돈이 없으면 가치가 적은 것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삶의 중요한 가치들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돈을 중요시하는 자본주의는 수준 낮은 저급한 시스템이다. 자본주의가 아니었다면 인간은 좀 더 고귀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이기에 나는 그런 대로 내 생활을 유지하고 인정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 조선시대였다면 나는 정말 힘든 삶을 살았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직업 귀천을 따지지 않고 돈만 잘 벌면 인정해준다. [GETTYIMAGES]


조선, 관료 외에는 이류 인간 취급

조선시대 말과 일제강점기의 주요 인사 중 한 명으로 윤치호가 있다. 윤치호는 독립신문 발행인이었고, 독립신문사 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조선 말 자주독립을 위한 민중 대회였던 만민공동회의 최고지도자였으며, 한일합방 이후 애국지사가 대거 투옥된 105인 사건 때 감옥에 가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도 조선민립대 설립을 시도하는 등 조선 계몽을 위해 노력한 주요 인사였다. 그러나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일제 말기 결국 윤치호는 조선에 7명밖에 없는 귀족원 의원까지 오르는 등 대표적인 친일파가 됐다. 윤치호의 아버지는 윤웅열이다. 윤웅열은 서자이자 무관 출신이었다. 조선시대에 절대 출세할 수 없는 조건이었음에도 윤웅열은 전남 관찰사, 군부대신이 되는 등 관직에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항상 관직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종은 관직을 돈을 받아 파는 장사를 했고, 그러다 보니 모든 관리의 임기가 굉장히 짧았다. 관리들은 수시로 자기 자리를 잃고 백수가 됐다. 윤웅열은 관직에서 떨어질 때마다 다시 관직을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구직 활동을 했다. 돈으로 관직을 사기도 했다. 윤치호 일기에는 윤웅열이 전남 관찰사직을 얻고자 6만 냥을 냈고, 왕자 생일 때는 궁궐에 1만 냥을 보냈다고 적혀 있다. 당시 관찰사 월급은 1000냥 수준이었다. 지금 돈으로 따지면 관찰사직을 얻으려고 6억 원가량 냈고, 왕자 생일 때 1억 원 상당의 돈을 보냈다는 얘기다. 윤웅열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부정부패 공무원이었다.

젊은 시절 윤치호는 권력을 최고 가치로 알고 관직을 쫓아다니는 사람들을 경멸하던 계몽 청년이었다. 먹고살 돈이 충분한데도 관직을 사서라도 관리 생활을 유지하려는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젊은 윤치호에게 윤웅열은 이런 식으로 말한다.

“이런 거에 휘둘리지 않고 고상하게 살아가는 게 좋은 줄 누가 모르는가. 그런데 높은 학문을 가지고 깨끗하게 살아간다고 누가 존중해주는가. 관직이 없으면 아무리 돈이 있어도 무시당한다. 사람들은 관직에 있는 이만 존중하고 무시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렇게 해서라도 관직을 가지려는 거 아닌가.”

조선시대는 관료 사회였다. 관료가 아닌 사람은 이류 인간이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소용없었다. 은메달은 아무리 많아도 금메달 하나를 당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학식, 돈, 기술 등이 아무리 많아도 현재 관직에 있는 자를 당하지 못했다. 그러니 사람들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관리가 되려 노력했다. 돈을 벌기 위해 관리가 된 것이 아니다. 자기 돈을 퍼부어서라도 관직을 얻으려 했다. 귀족사회 등 신분사회도 마찬가지다. 모차르트는 당시에도 최고 천재 음악가였지만 어디까지나 귀족의 하인 같은 존재였다. 귀족과 같은 밥상에 앉지 못하고 하인들과 함께 구석에서 밥을 먹어야 했다. 돈을 많이 번 상인은 귀족 작위를 사려고 했다. 돈보다 관직, 귀족 같은 신분이 더 중요했다. 자본주의가 되기 전 사회는 그랬다. 이런 관료 중심 사회는 오래전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 사회가 어땠는지 지식으로만 알 뿐,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나는 관료 사회가 무엇인지, 자본주의 사회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실감하고 있다.

아직 남아 있는 관료주의 시각

나는 돈을 벌고 나서 직장을 그만뒀다. 이후 특별히 직업적으로 하는 일 없이 파이어족으로 살고 있다. 어디에 소속되지 않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기를 원한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여러 관점으로 평가한다. “좋겠다” “부럽다”는 사람도 있고, “그렇더라도 직장을 그만둘 필요가 있었나”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이렇게 긍정적·중립적으로 보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연세 지긋하신 집안 어른이 있다. 이분에게 나는 천하의 멍청이다. 아무 문제없이 다니던 직장을 스스로 그만두고 백수가 된 한심한 놈이다. 돈이 있어서 먹고살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직장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 그다음은 직장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가 중요하다. 직장이 없는 백수는 아무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 교수직을 그만둔 나는 집안의 자랑거리에서 한순간에 집안의 수치가 돼버렸다. 이분에게 나는 정말 불쌍한 놈이다. 나이 오십 넘어 직장에서 떨어져나온 한심한 놈이다. 다른 사람을 만나면 내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는다. 이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집안에 교수가 있다고, 명문대 출신이 있다고 자랑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절대 다른 사람에게 내 얘기를 하지 않는다. 창피해서 말도 꺼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같이 밥을 먹으면 내가 돈을 내는 것도 꺼린다.

“직장도 없고 돈도 못 버는 애가…”라며 자신이 돈을 낸다. 또 이런 말도 건넨다.

“어디 직장 들어갈 데 알아보고는 있나.”

“받아주는 데도 없다”고 대답한다. 그런 식의 대화가 몇 번 오간 후 이런 말도 한다.

“공무원시험이라도 보는 건 어떤가.”

공무원시험은 나이 제한이 없다. 나이 오십이 넘어도 시험에 합격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 공무원시험 준비를 해서 공무원이 되라는 얘기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정말 놀랐다. 이분이 보라는 시험은 9급 공무원시험이다. 이건 이분이 보기에 지금 내 상태가 9급 공무원보다 훨씬 못하다는 얘기다. 돈이 얼마가 있든 상관없다. 사회적으로 어떤 일을 하든 상관없다. 제대로 된 직장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 이 말을 듣고 조선시대 관료사회가 어떤 사회였는지, 유럽 귀족사회가 어떤 사회였는지 새롭게 느끼게 됐다. 관료가 아니면 아무것도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 귀족이 아니면 아무리 뭘 어떻게 해도 사회적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회가 자본주의 이전 사회였다.

자본주의를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

이런 경험을 거치면서 나는 자본주의 사회를 굉장히 긍정적으로 보게 됐다. 사람들은 자본주의 사회가 돈만 추구한다며 잘못된 제도라고 본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뭘 해도 돈만 벌면 인정받을 수 있다. 음악으로 돈을 벌어도 되고 미술로 돈을 벌어도 된다. 공무원이 돼서 돈을 벌어도 되고 장사를 해서 돈을 벌어도 된다. 돈이 유일무이한 가치라고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행위에는 차별이 없다. 음악으로 큰돈을 버는 사람도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미술로 큰돈을 번 사람도 유명 인사가 된다. 사업으로 큰돈을 벌어도, 유튜브로 돈을 벌어도, 배우나 가수가 돼 큰돈을 벌어도 훌륭한 사람으로 인정받으며 사회의 롤 모델이 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뭘 해도 된다. 그 결과 돈만 벌면 사회에서 인정받고 성공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도 분명 문제가 있다. 하지만 관리가 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직장이 없으면 뭘 어떻게 해도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사회보다는 자본주의 사회가 훨씬 더 좋지 않은가. 조선시대 관료주의 사회 시각에서 볼 때 나는 그냥 9급 공무원보다 못한 백수이고 한량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 시각에서는 그렇게까지 한심한 대우는 받지 않는다. 이러니 나로서는 자본주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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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주간동아 1445호에 실렸습니다]




최성락 경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