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증자 늘며 소액주주 급증 바이오 신약개발 불확실성 높아 “대형투자보단 단기수익 초점 장기 투자-인수합병 동력 꺾일것”
국내 바이오 업계가 이사의 충실(loyalty) 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시키는 상법 개정안에 긴장하고 있다. 소액 주주 비율이 높은 바이오 업계는 소액 주주의 다양한 요구를 다 맞추기 힘들기에 투자에 소극적으로 되고, 각종 소송에 시달릴 가능성은 커진다.
23일 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신약 개발을 중심으로 하는 주요 바이오 벤처들의 소액 주주 지분은 평균 60% 이상이다.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투자 혹한기를 견디고 있는 바이오 기업들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유상증자를 수차례 진행한 결과다. 실제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2019년 1조1033억 원에 달했던 바이오·의료 분야 투자액은 2023년 상반기(1∼6월) 3665억 원으로 감소했다. 이는 전년 동기(6758억 원) 대비 약 46% 줄어든 수준이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신약 개발사들은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상장 이후에 대형 투자사들이 큰 투자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부분 일반 소액 주주들로 채워지게 된다”며 “잦은 유상증자로 최대 주주 지분은 줄고 소액 주주 지분이 높은 구조를 갖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법 개정 논의는 당장 바이오 업계의 인수합병(M&A)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신약의 임상시험이 진척될수록 더 커지는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캐시카우’가 확실한 기업과의 M&A를 선택하는 바이오 기업이 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상법 개정안을 검토하고 나서며 기업 간 M&A 논의가 주춤하는 분위기다.
국내 바이오 전문 회계법인의 한 임원은 “상법 개정이 논의되면서 바이오 기업들은 M&A에 나서기보다 일단 숨죽이고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며 “산업이 몸집을 키우는 과정 중 하나가 활발한 M&A인데, 그 동력이 꺾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앞서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상법 개정 시 국내 상장사 153개 중 52.9%는 M&A 계획을 재검토하거나 철회하겠다고 응답한 바 있다.
국내 바이오 기업의 한 대표는 “지금도 사외이사를 모시는 게 쉽지 않다. 리스크가 큰 사업인 만큼 소액 주주들의 소송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분들도 많다”며 “상법 개정으로 이런 현상이 더 심화되면 어쩔 수 없이 상대적으로 전문성이 부족한 사외이사를 모셔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