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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 나쁜 사람[내가 만난 명문장/정재훈]

입력 | 2024-06-23 22:57:00



“당신은 좋은 사람이냐, 아니면 나쁜 사람이냐?” “잘 모르겠다(Non lo so).”


―영화 ‘더 이퀄라이저3’ 중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총에 맞아 죽을 뻔한 맥콜(덴절 워싱턴)을 이탈리아 조그만 마을 의사가 살렸다. 맥콜이 나중에 살려준 이유를 물었다. 의사는 당시 상황을 상기시킨다. 죽어가는 맥콜에게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물었는데, 모르겠다고 답했다는 것. 그래서 의사는 맥콜이 좋은 사람이라 판단하고 치료했다고 한다. 악당을 서슴없이 죽이던 맥콜이 선악에 대해 고민하던 흐름에서 나온 장면이다.

한국에서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고 상상해 보자. 맥콜처럼 대답하면 나는 그냥 나쁜 사람이 된다. 무언가 켕기는 게 있구나, 이런 반응이다. 그래서 성찰적 답을 하면 안 된다.

무조건 나는 ‘좋은 ○’이다. 모함을 받았을 뿐이다. 우겨야 한다. 그러면 내 편은 나를 ‘좋은 ○’으로 믿어준다. 상대편은 어차피 나를 ‘나쁜 ○’으로 프레임을 씌운다. 나의 성찰과 변화에 대한 이해는 없다. 우리 사회에서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은 ‘내 편 네 편’ 진영이기 때문이다. 용공과 반공, 독재와 민주, 가해와 피해로 기준을 정해 놓고 내 편, 네 편, 좋은 ○, 나쁜 ○ 갈라놓으면서 서로 재미를 봐왔다.

불과 몇 % 차이로 정권이 갈리고 국회 의석수가 압도적 불균형을 이루는 건 큰 관심거리가 아니다. 자기 진영 안에서 나눠 가질 수 있는 권력과 자리, 이권 등을 수단으로 사람을 줄서기 시키면 그만이다. 그래서 같은 부동산 투기, 탈법 코인 투자, 아빠·엄마 찬스, 직권 남용, 막말도 내 편이 하면 투자, 부모 사랑, 업무 추진력, 솔직함이 된다.

사람 전체로서, 가진 능력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존중하는 모습은 이미 사라졌다. 일단 내 편에 서서 저쪽을 향해 얼마나 큰 목소리로 선명하고 거칠게 나쁜 ○이라고 외칠 줄 아느냐가 그 사람의 인격이며 능력이 되었다. 그런 사람에게 열광하는 대중이 점점 늘어간다. 어디로 갈 것인가, 한국?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