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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영농, 값비싼 농기계 구입 대규모 경작… 고령화 대안 부상

입력 | 2024-06-25 03:00:00

전국 첫 도입후 1년 ‘늘봄영농조합’
농민들 땅 빌려주고 조합원 참여
넓어진 땅-기계화로 ‘규모의 경제’
일당+배당… 80대 농부 “참 잘했다”



18일 경북 문경시 영순면 율곡리의 한 논에 수확한 양파가 커다란 바구니에 담겨 있다. 이 논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임대 방식의 공동영농 모델을 도입해 지난해 6월부터 농사를 짓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땅을 빌려준 농민들에게 3.3㎡당 3000원의 배당금도 선지급했다. 문경=이호 기자 number2@donga.com



“땅을 모아 다 같이 농사를 지을 조합을 만들자고 했을 때는 다들 ‘여기가 북한이냐’고 했죠. 하지만 여든 넘어서도 계속 농사를 지으셨던 어르신들께서 이젠 이런 땡볕에 나와서 일하지 않아도 된다고 ‘참 잘했다’는 말씀들을 하세요.”

18일 경북 문경시 영순면 율곡리의 한 논에서 커다란 트랙터를 몰던 홍의식 늘봄영농조합 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그는 양파 수확을 마친 논에 또 감자를 심기 위해 땅을 가는 중이었다. 주변 논들에서는 수십 명이 양파 수확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었다. 홍 대표는 “양파를 팔고 결산을 해봐야겠지만 땅을 빌려주신 분들께 비율에 따라 추가 배당금도 드릴 수 있을 것 같다”며 “그때는 더 좋아하시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 값비싼 농기계도 공유로 부담 ↓

경북도는 지난해 6월 고령화와 일손 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농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임대 방식의 공동영농 모델을 도입했다. 전국 최초로 도입된 이 모델이 홍 대표가 일하고 있던 논을 포함해 총 110ha의 논에서 현재 운영 중이다. 공동영농 모델은 농민들이 자신들이 보유한 땅을 영농조합법인에 빌려주고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방식이다. 재배 작물 등 경영은 법인이 알아서 한다. 만약 조합원이 농번기에 일손을 도우면 일당을 받을 수 있고, 생산된 작물을 팔아 발생한 수익은 배당 형태로도 지급받을 수 있다.

이날 논에선 농촌에선 쉽게 보기 힘든 포클레인까지 동원돼 수확한 양파를 트럭에 옮겨 싣고 있었다. 수천만 원 상당의 트랙터도 여러 대가 보였다. 제갈승 경북도 농업정책과 농정기획팀장은 “공동영농 모델이 도입된 이후 개인이 사기에는 부담이 큰 농기계를 조합이 구입해서 모든 농지에서 쓰고 있다”며 “농사 짓는 땅이 대폭 넓어지면서 나타나는 ‘규모의 경제’로 얻을 수 있는 이득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80개의 농가를 모아 영농조합을 만든 홍 대표는 공동영농의 경쟁력 중 하나로 이모작을 꼽았다. 그는 “조합을 통해 농사를 지으면서 벼농사의 틀에서 벗어나 콩, 양파 등 이모작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경북도는 올해와 내년 이모작을 통해 양파 5000t뿐만 아니라 콩 214t, 감자 900t이 생산 가능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3.3㎡당 생산량으로 보면 전국 평균을 웃도는 수준이다.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총수입 자체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110ha 논에서 벼농사만 지었을 경우 경영비를 제외한 총수입은 7억7900만 원이지만 콩과 양파, 감자 등을 재배하면서 총수입은 24억7900만 원으로 3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 “경영진이 결정 잘못하면 타격도 커”

정부는 이 같은 공동영농 모델을 전국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여러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특히 기획재정부는 다음 달 내놓을 ‘역동경제 로드맵’에 담을 농업 생산성 향상 방안 중 하나로 공동영농 모델 확산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경북 문경의 공동영농 모델은 농가 고령화뿐만 아니라 규모화와 기계화를 통한 생산비용 절감, 농산물의 안정적 생산·공급, 농가 소득 안정 등 여러 측면에서 시사점이 있다”고 말했다.

고령화와 소규모 농가 증가로 이미 한국의 농업 생산성은 지속가능성 측면에선 한계에 도달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70대 이상 농가 수는 2003년 26만9000가구에서 2023년 47만7000가구로 늘었고, 같은 기간 0.5ha 미만의 소규모 농가는 44만1000가구에서 52만8000가구로 증가했다. 고령의 소규모 농가는 자동화율이 높고 노동력 투입이 작은 벼농사에만 집중해 매년 쌀이 과도하게 생산되는 문제도 발생한다. 경북도는 공동영농 모델을 통해 논벼 재배 면적의 10%를 이모작으로 전환하면 쌀 37만 t의 생산 감소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공동영농 모델의 경우 ‘경영진’의 판단에 따라 성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 해에 대규모로 작물을 재배하는 만큼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되면 그만큼 타격도 커질 수밖에 없다. 백승우 전북대 농경제유통학부 교수는 “영농조합을 이끄는 이들이 농업 기술과 경영 마인드, 리더십, 시장을 내다보는 혜안 등을 두루 갖춰야 바람직한 경영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문경=이호 기자 number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