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佛-伊여행 ‘그랜드투어’ 유럽 상류층 청년들 사이 유행 귀국후 적응 못해 각종 사회 문제 “고향 토지 등 재산 정확히 확인… 이웃 초대하고 연줄 만들라” 조언
이탈리아에 간 영국 청년들을 그린 18세기 그림. 당시 유럽 상류층 자제들의 프랑스, 이탈리아 유학이 유행이었는데 이런 관행을 ‘그랜드 투어’라고 불렀다. 하지만 귀국한 유학생 다수가 고국에 적응하지 못한 채 이런저런 문제를 일으켰고, 그랜드 투어 동행 교사 출신이었던 장 게이야르는 이들을 위해 고국 생활 적응법을 담은 책을 썼다. 사진 출처 ‘Yale center for British Art’ 홈페이지
설혜심 연세대 사학과 교수
《장 게이야르 ‘고향 적응법’ 지침서
‘고향에 도착하면 먼저 자신의 재산에 대해정확하고도 확실한 정보를 파악해야 한다.’
‘유학 후 고향에 잘 적응하는 법’(1682년)에 나오는 대목이다. 여기서 유학은 그랜드 투어라 불린 관행을 가리킨다. 그랜드 투어는 18세기 유럽에서 어린 청년이 교육을 위해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을 여행하던 관행을 일컫는 말이다. 종교분쟁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경제적 풍요를 누리던 영국 상류층은 자식을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으로 보내 외국어와 세련된 취향을 배워 오도록 했다. 이 여행은 엘리트 교육의 최종 단계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학생이 고국에 적응하는 일은 또 다른 문제였다. 실제로 18세기 영국에서는 귀국한 유학생들의 행태가 큰 문제로 대두했다. 외국에서 놀고 즐기던 생활습관을 계속하려 했는가 하면 영국이 답답하고 촌스럽다면서 유럽 대륙의 문화를 무조건 숭앙하고 모방하려는 등 꼴사나운 행동이 만연했다. 그런 탓에 여행에서 돌아온 영국인에게는 ‘마카로니(macaroni)’라는 경멸 어린 별명이 생겨났다. 마카로니는 여행자가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맛보게 되는 음식을 뜻했다.
게이야르의 ‘유학 후 고향에 잘 적응하는 법’이 담긴 합본 책. 사진 출처 Bonhams.com
하지만 현실은 이보다 좀 더 복잡했다. 설사 자기 이름으로 된 재산이 있다고 하더라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 재산의 대부분은 토지로 이루어졌는데, 토지의 처분은 명목상의 ‘절대적인 지배권’과는 조금 달랐다. 영국에서 토지는 경제적 자원일 뿐 아니라 한 가문이 특정 지역을 지배하는 상징으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따라서 가문의 영속을 위해 영지가 처분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다양한 안전장치가 존재했다. 귀국한 젊은이는 이런 변수들을 모두 고려해 자신의 재정적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했다.
고향에 돌아온 젊은이가 지켜야 할 또 다른 지침은 고향에 대해 진정한 애착을 갖는 일이었다. 게이야르는 부재지주(不在地主)를 강력하게 비판하며 젊은이가 반드시 고향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재지주는 사람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일단 고향에 정착하면 지위에 걸맞은 좋은 집을 마련하고 가능한 한 많은 이들이 방문하도록 만들라고 독려했다. 접촉하는 사람 모두의 자질과 지위에 어울리는 예의를 갖추는 일도 중요했다. 크고 작은 행사에 가난한 이웃 사람들을 최대한 고용할 것이며 소작인들에게 까다롭게 굴지 말라고 당부했다.
‘유학 후 고향에 잘 적응하는 법’에는 눈에 띄는 또 다른 지침이 있다.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소송이나 재판을 최대한 피하라는 조언이다. 소송은 비용이 많이 들고 사람을 지쳐 쓰러지게 하며 거의 성공하지 못하고 오직 법률가를 살찌울 뿐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법정에 가려면 가방 네 개를 가져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하나에는 아주 좋은 이유가 담겨 있고, 두 번째 가방에는 연줄, 세 번째에는 돈, 네 번째 가방에는 인내가 가득 들어 있어야 한다. …정의를 수호하겠노라고 맹세하고 법조계에 진입한 사람들은 전혀 반대의 일만 하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그들은 부정과 손을 잡거나 돈만 밝히며, 모든 손해와 처벌은 패소한 사람이 짊어져야 한다.’
근대 초 영국이 탄생시킨 ‘재산권의 불가침성’은 상업과 산업의 발달을 촉진해 ‘자유주의적 경제 시스템’의 토대를 구축했다고 알려진다. 하지만 예법서에서까지 법적 분쟁을 피하라는 내용이 나타난다는 사실은 그런 해석에 균열을 준다. 현실은 미성숙한 법체계와 자격이 부족한 법조인들이 영국 역사가 자랑하는 그 재산권을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했던 것이다.
설혜심 연세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