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사망자 83% 무허가 순례자 돈 때문에 공식비자 없이 밀입국 땡볕 아래서 쉬지 않고 걷다 참변”
AP 뉴시스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 열린 이슬람권의 최대 성지순례 행사 ‘하지’에서 온열질환 등에 따른 사망자가 1300명을 넘어섰다. 낮 최고기온이 50도를 넘나드는 ‘살인 더위’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냉방시설, 쉼터에 접근하기 어려운 저소득층 미등록 외국인 순례자들에게 피해가 집중됐다. 불법 브로커와 대행사 등이 판치는 하지의 지하경제도 비판받고 있다.
파흐드 알 잘라젤 사우디 보건부 장관은 24일 국영 TV에 출연해 14∼19일 열린 하지 기간 동안 온열질환 사망자가 총 1301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번 하지 사망자에 대한 공식 집계가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사우디 국립기상센터에 따르면 이번 하지에 메카 대사원은 한때 최고 51.8도까지 치솟았고, 여전히 온열질환을 호소하는 이가 많아 사망자는 더 늘 수 있다.
매년 이슬람력 12월 7∼12일 치러지는 하지는 무슬림의 5대 의무 중 하나로 꼽힌다. 일생에 반드시 한 번은 이슬람 발상지인 메카와 메디나를 찾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종교적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장거리를 걸어온 해외 입국 무허가 순례자도 많다. 당국은 사망자 중 83%가 무허가 순례자로 다수는 이집트 국적이라고 덧붙였다.
미등록 순례를 택하는 건 경제적 이유 때문이다. 미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하지 공식 여행 패키지는 순례자의 출신 국가에 따라 5000∼1만 달러에 달한다. 경제 상황이 악화된 이집트, 요르단 등의 순례자들에겐 버거운 수준이다. 이에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공식 비자 없이 밀입국시키는 대행사나 브로커 등을 이용하게 된다. 한 이집트 순례객은 NYT에 “부모님 순례를 위해 2000달러를 (무허가) 대행사에 지불했다”고 밝혔다.
사망자가 집중된 이집트의 무스타파 마드불리 총리는 뒤늦게 “미등록 순례자들의 여행을 도운 대행사, 브로커 등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