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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정원수]진보-보수 아닌 ‘모두의 사법부’ 되는 길

입력 | 2024-06-24 23:18:00

정원수 부국장



“가능하면 안 나오게끔 노력해야죠.”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 때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대법원장이 표결하기 전에 6 대 6이 나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대법원장이 재판장인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원장과 대법관 등 총 13명으로 구성된 최고 법원의 최고 판결 기구다. 그런데도 다수의견과 반대의견이 1표 차밖에 안 되는 7 대 6의 전합 판결이 과거 종종 있었고, 그때마다 캐스팅보트 역할을 한 대법원장의 선택이 커다란 논란이 됐다.


“7 대 6 전합 가능하면 안 나오게 노력”

조 대법원장은 “한 번 얘기했다고 해서 그게 불변의 진리도 아니고, 한 번 더 숙고해 보면서 좀 더 나은 결론을 내기 위해 노력해야죠”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저도 대법관 때 의견을 바꾼 적이 있다. 그게 부끄러운 게 아니고, 국민들이 보기에 바람직한 결론으로 가는 것”이라고도 했다. 조 대법원장은 존 로버츠 미국 연방대법원장이 뛰어난 법관들의 공통점으로 맨 처음 꼽은 ‘지적 겸손’(intellectual modesty)도 언급했다. 내 생각이 항상 옳은 게 아니라고 의심하고, 동료들과 토론해서 답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취지일 것이다.


사실 조 대법원장의 이런 발언은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다. 그는 10년 전 대법관에 취임하면서 “생각은 허공처럼 경계가 없고, 우리의 두 눈은 좌우를 가리지 않는 법”이라고 했다. 대법관 재직 때 진보나 보수로 분류하기 어려운 결정을 여럿 했다. 대법원장 청문회에서도 그의 보수 성향을 우려하는 의원 질의에 “저보다 진보적인 판결을 많이 낸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을 정도다.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받은 직후엔 “무유정법(無有定法·정해진 법이 없는 게 참다운 법)이라는 말이 있다”라며 “한평
생 법관 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항상 중도의 길을 걷고자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종전 판례를 바꾸거나 사회적 관심사가 높은 사건을 판단하는 전합 판결의 파급력이나 영향력은 매우 크다. 그런데 전합 판결이 우리 사회의 정치적, 이념적 갈등에 대한 해법을 찾는 과정이라기보다는 갈등 그 자체를 아무런 여과 없이 드러내거나 오히려 갈등 증폭의 계기가 된 적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전임 대법원장 때의 ‘백년전쟁’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 제재 사건이다. 1·2심이 모두 제재가 적법하다는 결론을 내렸는데도, 대법원은 7 대 6 아슬아슬한 표차로 하급심 판결을 뒤집었다. 다수 및 반대 의견엔 상대편에 대한 감정적인 문구까지 들어가 있었고, 대법원장이 절반의 편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반복돼선 안 될 반면교사라고 할 수 있다.


조 대법원장은 대법관 임명 제청의 최우선 기준을 실력이라고 했다. 살인 사건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피고인을 만들지 않도록 하는 것처럼 실력이 인권 보호를 위한 첫 번째 수단이라는 이유에서다.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는 필요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시대의 변화를 읽고, 오랜 관행을 바꿀 수 있는, 그래서 국민의 기본권을 실질적으로 지키기 위한 판결을 하지 못한다면 다양화가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대법원에선 양극단의 좌우 경계 없어야

우리 사회가 양극단으로 갈라지면서 ‘세상만사의 사법화’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적어도 대법원은 진보와 보수의 경계가 없다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치열한 토론 끝에 시시비비를 분명하게 가리는 일관된 판결을 한다면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쌓일 것이다. 지난달 첫 전합 선고에 시동을 건 ‘조희대 코트’는 ‘절반이 아닌 모두의 사법부’가 되어야 한다.




정원수 부국장 need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