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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전력 난민’ 사태로 보는 전력시장 자유화의 현실 [기고/유승훈]

입력 | 2024-06-26 03:00:00



게티이미지코리아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창의융합대학 학장

이웃 일본에는 전력을 공급받기 어려운 소비자를 의미하는 ‘전력 난민’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전력시장 자유화로부터 생겨났다. 일본은 1995년 발전 부문을 개방하기 시작했고 전력 판매 부문은 2000년 일부 자유화를 거쳐 2016년부터 완전 자유화됐다. 송배전 부문을 제외한 발전 부문과 전력 판매 부문이 모두 시장 경쟁에 맡겨진 것이다.

각 소비자는 기존의 대형 전력 판매 회사를 떠나 새로운 판매 회사인 신전력회사를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신전력회사들은 소비자 견인을 위해 기존 대형 판매 회사보다 요금을 낮게 책정했고 전기를 가스·통신 등과 함께 공급해 요금을 할인하는 결합 상품을 출시했다. 전력 판매 시장은 활성화돼 2016년 291개였던 신전력회사가 2022년 초에는 752개가 됐다.

이처럼 성공한 것으로 보여 모범사례로 언급됐던 일본의 전력시장 자유화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글로벌 에너지 위기로 인해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연료비 급등으로 전력 도매가격이 급격히 올랐지만 신전력회사들은 소매가격을 충분히 올리지 못해 전기를 팔면 팔수록 적자가 늘어났다. 버틸 여력이 없던 일부 소규모 신전력회사는 망했다.

2022년 1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휴·폐업한 신전력회사는 83개에 이른다. 소비자들은 졸지에 전력 판매 회사를 이동해야 했다. 하지만 기존 대형 판매사들도 전력 확보가 어렵다는 이유로 수용을 거부하면서 이른바 전력 난민이 생긴 것이다. 일본 자원에너지청에 따르면 2022년 10월 기준 전력 난민 수와 이들의 계약 전력은 각각 4만5871호, 6851㎿(메가와트)나 됐다.

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기존 요금 대비 30∼68%나 높게 새 계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었다. ‘수익성’에 기반한 자유화된 전력시장에서는 글로벌 에너지 위기와 같은 외부 리스크를 막아줄 수 있는 방패가 없기에 소비자가 그 위험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이번 일본의 사례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 자유화된 시장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전기는 대체재가 마땅치 않기에 가격이 아무리 올라도 쓸 수밖에 없는 필수재다. 따라서 어떠한 내외부적 위협 요인이 있더라도 국가는 국민이 전기를 불편함 없이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국가와 국민을 위해 글로벌 에너지 위기의 충격을 오롯이 받아내며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한 주체는 사실 한전이며 그 결과는 ‘부채 200조 원’이다.

일본의 전력 난민 문제는 그야말로 남의 나라 얘기였다. 하지만 낮은 가격에 고품질의 전기를 공급하고 있는 한전은 이제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 재무 상황 악화가 지속된다면 결국 설비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 전력 공급 안정성이 저해되고 기자재와 건설 발주가 줄어 전력 생태계 전체의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다. 더 나빠지기 전에 전기요금 현실화가 절실하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창의융합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