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前 美기밀문서 공개로 기소돼 사이판 법원서 유죄 인정 석방 합의 교도소 출소… 모국 호주 돌아갈 듯
줄리언 어산지가 24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에서 출발해 환승을 위해 태국 방콩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자유에 더 가까이 간다”며 올린 모습. 사진 출처 위키리크스 X
2010년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에서 미국 정부 기밀문서 등을 대량으로 공개해 간첩 혐의로 기소됐던 줄리언 어산지(53)가 그간 희망하던 대로 미 본토로 끌려가지 않고 10년 넘은 도피생활을 마무리하게 됐다. 미국령 사이판 법원에서 유죄를 인정하는 대신 5년 넘게 영국 교도소에서 복역한 기간을 인정받아 사실상 곧바로 석방되도록 합의한 것이다.
미 워싱턴포스트(WP) 등은 24일 미 법무부 서류를 인용해 “어산지가 이틀 뒤 미국령 사이판의 법원에 출두해 ‘중범죄’ 혐의에 대한 자신의 유죄를 인정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해당 법원은 어산지에게 62개월형을 선고하면서, 2019년 4월부터 이달 23일까지의 영국 복역을 이미 징역을 산 것으로 인정할 예정이다. 이에 24일 영국 교도소에서 출소한 어산지는 사이판에서 ‘자유의 몸’이 된 뒤 모국인 호주로 돌아갈 것으로 알려졌다.
어려서부터 해킹에 능숙했던 어산지는 2006년 위키리크스를 설립하고 2010년 미 육군 첼시 매닝 일병이 빼낸 미 군사·외교 기밀문서 수십만 건을 게재해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해당 문서엔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 당시 미군 전쟁범죄와 관타나모수용소 인권침해 등 민감한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7년 가까이 대사관에 머물던 어산지는 에콰도르 정부와도 사이가 나빠져 2019년 결국 쫓겨났고, 현지 교도소에 수감됐다. 앞서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제1조를 감안해 어산지를 기소하지 않았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그해 ‘1917 스파이방지법’ 위반과 간첩활동 등 18개 혐의로 전격 기소하면서 영국에 송환을 요청했다. 하지만 어산지는 미국으로 돌아간다면 종신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송환을 놓고 미 당국과 수년간 공방을 벌여왔다.
이번 합의로 어산지는 오랜 도피를 끝내게 됐다. 일각에선 미 정부의 이번 결정이 “언론을 탄압한다”는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을 고려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간 서구 사회에선 어산지 석방 요구가 줄기차게 이어졌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4월 어산지가 고국인 호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 달라는 호주 정부의 요청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