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확인 어려워 속타는 유족들 라오스인 아내 찾으러 온 남편… 안치 병원 몰라 장례식장 뺑뺑이 신원확인 유족도 ‘3분 만남’ 비통… 해외 유족 많아 DNA 확인 늦어져
“곧 결혼식을 올릴 기대에 부풀어 있던 딸인데….”
25일 경기 화성시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앞에서 만난 중국인 채모 씨(79)는 전날 화재로 타버린 공장(3동)을 바라보며 이처럼 말했다. 그는 주한 중국대사관으로부터 딸(39)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을에 새 신부가 될 예정이었던 딸이 갑자기 떠났다는 소식에 채 씨가 급하게 인근 장례식장으로 달려갔지만, 딸이 안치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시신이 전소한 탓에 신원을 확인할 수 없어서다. 채 씨는 장례식장 2곳을 헤매다가 이날 화재 현장을 찾았다.
채 씨는 공장 안에서 목걸이를 건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목걸이를 건 (시신이 내 딸이라면) 형태만 봐도 내 딸인지 알 수 있다. 아비가 어떻게 몰라보냐”며 경찰에 시신이나 목걸이 사진을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이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故 16번’ ‘故 21번’ 번호로 표시된 희생자 25일 오후 경기 화성시 송산면 송산장례문화원 현황판에 전날 발생한 화성 리튬전지 제조공장 화재로 숨진 사망자 현황이 번호로 표시돼 있다. 사망자 시신이 불에 타면서 신원 확인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화성=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이번 사고의 유일한 라오스인 희생자인 A 씨의 남편 이모 씨도 아내가 안치된 곳을 찾으려 여러 장례식장을 전전하다가 도착한 화성중앙종합병원 장례식장에서 황망해했다. 그는 뇌 수술을 받고 24일 퇴원하는 길에 지인으로부터 아내의 사망 소식을 듣고 그 길로 붕대도 못 푼 채 현장에 달려왔다고 한다. 이 씨는 “‘쭈이’(아내의 애칭)가 ‘수술 잘 받으라’고 보낸 문자가 마지막이 됐다”며 “어느 병원으로 이송됐는지 몰라서 사고 현장과 여러 장례식장을 무작정 ‘뺑뺑이’로 돌고 있다”고 말했다.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의 유가족도 비탄에 잠겼다. 25일 낮 12시 송산장례문화원 지하 주차장에 김모 씨(52·아리셀 연구직) 유가족의 울음이 울렸다. 김 씨는 24일 아리셀 리튬전지 제조공장 폭발 사고로 숨진 23명 가운데 가장 먼저 사망 판정을 받았다. 김 씨 가족에게 허락된 작별 인사의 시간은 짧았다. 김 씨의 시신을 부검 장소인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옮기기 전, 단 3분이었다. 김 씨를 마주한 아내와 자녀들은 비통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김 씨를 태운 차가 주차장에서 빠져나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 중국서 유가족 DNA 채취해 신원 확인
다만 희생자 대다수의 유가족이 해외에 거주하고 있어, 신원 확인엔 시일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해당국 영사를 통해 현지에서 유가족의 DNA를 채취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경찰 관계자는 “숨진 외국인의 인적사항을 영사 측에 일괄적으로 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신원 확인이 지연되면서 사망자가 안치된 화성 인근 장례식장 5곳 모두 장례는커녕 유족 안내조차 못 하고 있다. 송산장례문화원 관계자는 25일 오전 “사망자 다수가 외국인이라 DNA 검사를 해야 하고 신원이 확인된 한국인 사망자도 부검해야 해 대기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화성=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화성=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화성=서지원 기자 wis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