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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진영]고교생 제자에 심히 부적절한 편지 보낸 교총 회장

입력 | 2024-06-26 23:21:00



박정현 인천 부원여중 교사(44)는 얼마 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77년 역사상 최연소 회장으로 선출됐다. 주로 교수들이 맡아온 회장 자리에 평교사 출신이 오른 것은 박 회장이 세 번째다. 그런데 20일 임기 시작 일주일도 되지 않아 교총 회원들의 사퇴 요구를 받고 있다. 11년 전 인천국제고 근무 시절 제자에게 보낸 ‘부적절한 편지’가 공개됐는데 그 수위가 높다.

▷처음엔 ‘부적절한 쪽지’가 논란이었다. 회장 선거 기간 중 인천국제고 박 회장 반이었다는 누리꾼 등이 박 회장이 제자에게 ‘사랑한다’ ‘차에서 네 향기가’ ‘어제보다 오늘 더 사랑한다’고 적은 쪽지를 건넸다고 폭로했다. 박 회장은 22일 사과문을 내고 “한 제자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입시에서 좋은 성과를 낼 것 같아 쪽지를 보내 격려했는데 과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 일로 ‘품위유지 위반’에 따른 ‘견책’ 조치를 받았으며 견책 처분은 3년 만에 말소됐고 올 2월 사면도 받았다는 것이다. 교총도 “성비위는 아닌 것으로 확인했고 회원들도 문제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3일 후 박 회장이 당시 제자에게 보낸 편지 사본 12장이 교육전문매체를 통해 추가로 공개됐다. 몇 구절만 옮기면 이렇다. “당장이라도 안아주고 싶었어” “차에 떨어지는 빗소리, 당신의 향기” “얼굴 한번 마주치기 어렵지만 자기를 떠올리는 일만으로도 행복해요” “어젠 기숙사에서 자며 자기 생각 참 많이 했어요”. 교총 회원들은 “회장이 사퇴하지 않으면 내가 탈퇴하겠다”고 하고, 학부모 단체는 “신임 회장 당선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야당에선 “권력에 의한 성범죄”라며 진상조사와 자진 사퇴를 요구한 상태다.

▷현재로선 편지를 받은 학생이 성적 수치심을 느꼈는지 확인되지 않아 성범죄라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우월적 지위에 있는 교사가 사제 간 신뢰 관계를 악용해 미성년자에게 부적절한 언행을 한 것은 지탄받을 일이다. 교사의 제자 성희롱이 드물지 않은데 당하는 학생들은 “내가 공부를 잘해서 예뻐하고 격려하신다”거나 “내가 형편이 어려워 각별히 챙겨주시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미숙한 제자가 먼저 접근해도 바로잡아 줘야 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다.

▷교권 침해 사례가 늘면서 교총의 교권 보호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초중고교생이 여교사에게 “남자 잘 꼬시죠” 같은 막말을 하는 일이 벌어질 때면 교총은 “교사가 어린 학생에게 도 넘은 성희롱을 당하는 현실”을 개탄해 왔다. 그런데 어린 학생에게 도 넘은 편지를 보낸 교사를 교원 대표로 뽑았다. 박 회장이 “교권 보호”를 호소할 때마다 사람들은 그가 여제자에게 보낸 연서의 낯 뜨거운 구절을 떠올릴 것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