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운 문화부 차장
‘사랑하는 아들 롤랑에게. 아빠는 너처럼 어린 한국의 아이들이 길에서, 흙에서, 눈 속에서 헤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곳에 왔단다.’
6·25전쟁에 참전했던 프랑스의 랄프 몽클라르 장군(1892∼1964)이 1950년 12월 23일 당시 생후 11개월의 어린 아들에게 보낸 편지다. “혹독한 겨울 날씨로 손가락이 얼어붙어 총을 쏘기조차 어려웠다”던 그해 겨울 몽클라르는 중공군의 거센 공세를 버텨내고 있었다. 이윽고 이듬해 2월 그가 이끈 프랑스군과 미군 1개 연대가 경기 양평군 지평리에서 38선 아래로 밀고 내려온 중공군 3개 사단과 맞닥뜨렸다. 5 대 1의 압도적인 병력 차이 탓에 전술상 유리한 고지를 버리고 평지에 원형 진지를 구축한 결사항전이었다. 1, 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은 백전노장 몽클라르의 지휘 아래 총검을 단 백병전까지 불사한 끝에 연합군은 중공군 참전 이래 첫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6·25 전사에 전설로 남아있는 ‘지평리 전투’다.
몽클라르는 6·25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스스로 프랑스 육군 중장에서 중령으로 네 단계나 계급을 낮췄다. 대대 단위만 파병하기로 한 프랑스 정부의 방침 때문이었다. 장성에서 영관급 장교로 낮아지면서까지 전쟁에 나선 이유에 대해 그는 “곧 태어날 자식에게 내가 프랑스 최초의 유엔군 일원으로 참전했다는 긍지를 물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지방자치단체별로 지역 문화유산을 관광자원으로 개발하는 추세와 맞물려 지평리 사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길만 조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기 얽힌 사연을 웹툰 등으로 풀어내는 ‘스토리텔링’을 결합해서다. 유명 인사나 장소를 기념하는 입간판만 세우는 방식으로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데 한계가 있다. 예컨대 공주 공산성(公山城)의 경우 몇 해 전 이곳에서 옻칠갑옷이 발견된 것과 맞물려 신라군에 맞서 최후 항전을 벌인 의자왕이 비장한 의식을 치르는 장면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유구와 유물의 의미는 장소가 갖는 스토리텔링에 크게 좌우될 수 있다. 고대 로마의 휴양 도시였던 터키 히에라폴리스의 ‘고대 수영장’이 대표적이다. 이곳 온천장 바닥에 깔아놓은 2500년 전 로마시대 조각상과 기둥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관광객들은 이를 직접 밟으면서 692년의 대지진으로 무너진 고대 문명의 흔적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따지고 보면 경주가 한국을 대표하는 역사 도시가 된 것도 신라 고분 발굴의 스토리텔링 덕이 컸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주도로 추진된 황남대총 등 대형 적석목곽분 발굴은 신라 황금문화의 화려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1971년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을 손수 입안하며 발굴 유적을 아우른 것처럼, 문화유산에 스토리텔링을 덧입히는 정책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김상운 문화부 차장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