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피난처로 몰리는 사람들] 옷-술 소비 줄고 먹거리 지출만 증가… 고물가에 휴가철 앞 이례적 현상 “아들 月12만원 방문 미술도 끊어”… 자녀 교육비조차 증가율 둔화
토요일인 22일 경기 용인시 수지구의 한 동네 마트. 회원으로 가입하면 매일 아침마다 싸게 들여온 ‘특가 상품’ 문자를 보내주는 곳이다. 이날은 수미감자와 오이, 양상추 등이 대상이라고 했다. 채소 판매대 앞에서 만난 주부 최모 씨(60)는 “감자 10㎏이 몇 주전 2만4000원이었는데 오늘 1만4800원에 판다고 해서 서둘러 왔다”며 “백화점 식품관은 물론 대형마트도 부담이 돼서 안 간 지 오래”라고 했다. 또 다른 주부 김모 씨(58)는 “지난번엔 오후에 왔더니 허탕을 쳐서 아침에 오이지용 오이를 싸게 판다는 문자를 보고 마트 문 여는 시간에 맞춰서 뛰어왔다”고 했다.
가계 소득은 늘지 않았는데 물가만 고공 행진을 계속하자 한 푼이라도 싸게 파는 ‘고물가 피난처’로 소비자들이 몰리고 있다. 특히 먹거리 비용이 워낙 치솟다 보니 생활필수품을 사는 데도 지갑이 쉽게 열리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 옷·술 소비 줄고 먹거리 지출만 증가
실질 소비지출은 물가 상승에 따른 소비액 증가 효과를 배제한 수치다. 실제 소비자들이 어느 품목에 돈을 더 쓰고 덜 썼는지 확인할 수 있는 지표다. 먹거리 비중이 늘어난 반면 의류·신발 소비지출은 2021∼2023년 계속 늘어나다 올해 4.1% 감소로 돌아섰다. 1분기는 보통 봄나들이와 여름휴가를 준비하느라 의류와 신발 소비가 늘어나는 시기인데 고물가로 인해 이례적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살림살이가 팍팍해진 가계는 주류(―1.4%), 담배(―1.2%) 소비도 줄였다.
교육비조차 증가율이 둔화하고 있다. 경기 용인시에서 세 살짜리 아들을 키우는 김모 씨(33)는 ‘방문 미술’ 교육을 최근 3개월 만에 해지했다. 김 씨는 “물가가 너무 오르니 한 달 12만 원 수강료도 부담스러워졌다”며 “아이와 외출할 때도 국가가 운영해 입장료가 저렴한 곳 위주로 찾아다닌다”고 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높은 물가가 지속되면서 나타난 소비지출 다이어트 현상”이라며 “의류와 신발 같은 선택적 소비는 지출을 미루고, 자녀 교육도 필수적인 것만 하느라 증가율이 축소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 확산되는 짠물 소비 트렌드
이랜드그룹의 킴스클럽 강서점에선 1∼5월 전체 매출액의 6.7%가 델리에서 나왔다. 킴스클럽 관계자는 “하루에 1600∼1800개를 진열하고 있다”며 “저녁 시간을 앞둔 오후 5시엔 텍사스윙이나 연어초밥 같은 인기 메뉴가 10분 내에 동이 난다”고 전했다.
롯데마트의 경우 1분기 먹거리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일제히 증가했다. △과일 25% △채소 10% △축산 10% △델리 10% △상온 대용식품 15% 등이다. 상품값이 올라 같은 양을 사더라도 매출액이 뛰기 때문이다. 반면 위생용품, 세탁세제, 구강용품 등 비(非)식품 부문 매출은 10% 줄었다.
● 외식도 쇼핑도 ‘저렴한 곳’에서
이민아 기자 omg@donga.com
송진호 기자 ji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