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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엔 주부들 ‘오이 오픈런’… 저녁엔 직장인 ‘마감세일 경쟁’

입력 | 2024-06-28 03:00:00

[고물가 피난처로 몰리는 사람들]
옷-술 소비 줄고 먹거리 지출만 증가… 고물가에 휴가철 앞 이례적 현상
“아들 月12만원 방문 미술도 끊어”… 자녀 교육비조차 증가율 둔화





토요일인 22일 경기 용인시 수지구의 한 동네 마트. 회원으로 가입하면 매일 아침마다 싸게 들여온 ‘특가 상품’ 문자를 보내주는 곳이다. 이날은 수미감자와 오이, 양상추 등이 대상이라고 했다. 채소 판매대 앞에서 만난 주부 최모 씨(60)는 “감자 10㎏이 몇 주전 2만4000원이었는데 오늘 1만4800원에 판다고 해서 서둘러 왔다”며 “백화점 식품관은 물론 대형마트도 부담이 돼서 안 간 지 오래”라고 했다. 또 다른 주부 김모 씨(58)는 “지난번엔 오후에 왔더니 허탕을 쳐서 아침에 오이지용 오이를 싸게 판다는 문자를 보고 마트 문 여는 시간에 맞춰서 뛰어왔다”고 했다.

가계 소득은 늘지 않았는데 물가만 고공 행진을 계속하자 한 푼이라도 싸게 파는 ‘고물가 피난처’로 소비자들이 몰리고 있다. 특히 먹거리 비용이 워낙 치솟다 보니 생활필수품을 사는 데도 지갑이 쉽게 열리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 옷·술 소비 줄고 먹거리 지출만 증가

27일 동아일보가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중 실질 소비지출을 분석한 결과 올해 1분기(1∼3월) ‘식료품·음료(주류 제외)’ 소비지출은 작년 1분기보다 0.6%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부터 3년 연속 감소하다 4년 만에 플러스로 돌아선 것이다.

실질 소비지출은 물가 상승에 따른 소비액 증가 효과를 배제한 수치다. 실제 소비자들이 어느 품목에 돈을 더 쓰고 덜 썼는지 확인할 수 있는 지표다. 먹거리 비중이 늘어난 반면 의류·신발 소비지출은 2021∼2023년 계속 늘어나다 올해 4.1% 감소로 돌아섰다. 1분기는 보통 봄나들이와 여름휴가를 준비하느라 의류와 신발 소비가 늘어나는 시기인데 고물가로 인해 이례적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살림살이가 팍팍해진 가계는 주류(―1.4%), 담배(―1.2%) 소비도 줄였다.

교육비조차 증가율이 둔화하고 있다. 경기 용인시에서 세 살짜리 아들을 키우는 김모 씨(33)는 ‘방문 미술’ 교육을 최근 3개월 만에 해지했다. 김 씨는 “물가가 너무 오르니 한 달 12만 원 수강료도 부담스러워졌다”며 “아이와 외출할 때도 국가가 운영해 입장료가 저렴한 곳 위주로 찾아다닌다”고 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높은 물가가 지속되면서 나타난 소비지출 다이어트 현상”이라며 “의류와 신발 같은 선택적 소비는 지출을 미루고, 자녀 교육도 필수적인 것만 하느라 증가율이 축소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 확산되는 짠물 소비 트렌드

‘짠물 소비’는 직장인들도 마찬가지다. 17일 오후 5시 30분 서울역 롯데마트의 ‘델리 코너’에는 저녁 식사거리를 사기 위한 20, 30대 고객들로 북적였다. 델리는 델리카트슨(delicatessen)의 줄임말로, 조리가 된 음식을 간편하게 포장해 주는 매장이다. 직장인 정모 씨(35)는 “바깥에서 샐러드를 사 먹으려면 1만 원을 훌쩍 넘는다”면서 자신이 고른 7000원짜리 샐러드를 들어 보였다. 문모 씨(33)는 “배달시키면 2만 원이 넘는 치킨을 저녁 세일 시간대에 오면 1만 원이 안 되는 가격으로 살 수 있다”고 했다.

이랜드그룹의 킴스클럽 강서점에선 1∼5월 전체 매출액의 6.7%가 델리에서 나왔다. 킴스클럽 관계자는 “하루에 1600∼1800개를 진열하고 있다”며 “저녁 시간을 앞둔 오후 5시엔 텍사스윙이나 연어초밥 같은 인기 메뉴가 10분 내에 동이 난다”고 전했다.

롯데마트의 경우 1분기 먹거리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일제히 증가했다. △과일 25% △채소 10% △축산 10% △델리 10% △상온 대용식품 15% 등이다. 상품값이 올라 같은 양을 사더라도 매출액이 뛰기 때문이다. 반면 위생용품, 세탁세제, 구강용품 등 비(非)식품 부문 매출은 10% 줄었다.

● 외식도 쇼핑도 ‘저렴한 곳’에서

팬데믹 기간 주저앉았던 저가 뷔페는 고물가에 외식비 부담을 덜고자 하는 가족 단위 손님을 끌어모으며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뷔페 ‘애슐리퀸즈’는 평일 점심 가격이 성인 1만9900원, 초등학생은 1만2900원이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부가 약 5만 원으로 외식을 할 수 있다. 최근 주말에 찾았던 경기 고양시 점은 160석이 가득 찬 것도 모자라 7, 8팀이 대기 중이었다. 공휴일 가격은 성인 2만7900원, 소인 1만5900원으로 조금 더 비싸지만, 냉면 한 그릇에 2만 원씩 하는 물가를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지가 되는 것이다. 애슐리퀸즈 관계자는 “올해 매출은 지난해보다 약 80% 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철 지난 의류를 싸게 파는 ‘팩토리형 아웃렛’과 소비 기한이 임박했거나 이른바 ‘B급 상품’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온라인 몰도 성행 중이다. 이러한 몰에서는 소비 기한 임박 제품, 과다 재고 상품, 리퍼브(refurbished·재공급품) 가전, 못난이농산물 등을 정상가 대비 최대 95% 할인해 판다. 온라인 사이트 ‘떠리몰’의 1분기 월간 이용자 수(MAU)는 41만 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68% 증가했고, 거래액도 35% 늘었다.

반대로 명품과 신제품 위주인 백화점 소비는 주춤하고 있다. 갤러리아백화점의 VIP 손님 증가율은 2019년 10%를 나타낸 후 2021년까지 24.9%로 뛰었는데 지난해 5.3%로 꺾였다. 이 증가율은 최근 5년 내 최저 수치다. 여유 있는 사람들조차 소비를 줄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민아 기자 omg@donga.com
송진호 기자 ji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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