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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바뀐 한반도 안보 지형, 국가적 위기에 초당적 대응 필요”

입력 | 2024-06-29 01:40:00

[화정평화재단 외교안보정책 좌담회] 군사원조 명시한 북-러 조약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은 25일 서울 중구 정동 컨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평양 정상회담과 북-러 협정 체결의 파장을 짚어보는 좌담회를 열었다. 왼쪽부터 유성옥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사장, 현인택 화정평화재단 이사장, 김병연 서울대 석좌교수.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한반도가 다차원적인 신냉전 구도로 빠져들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전쟁이 벌어지는 구도 속에서 북한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군사 원조를 앞세운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으로 한국의 자체 핵무장 목소리가 커지는 등 한반도 안보와 관련 고난도 방정식 마련이 절실하다. 지금은 과거 이념으로 단순하게 대립하던 냉전이 아니라, 미국과 중국의 패권 갈등이라는 복잡해진 정세 속에서 다면적인 성격의 신냉전 구도가 심화되고 있다.

현인택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 이사장(전 통일부 장관)은 25일 6·25전쟁 발발 74주년을 맞아 김병연 서울대 석좌교수, 유성옥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사장을 초청해 요동치는 국제 정세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구상하는 긴급 좌담회를 개최했다.

● “북-러 조약, 거대 체스판 흔드는 ‘악마의 거래’”

현인택 화정평화재단 이사장 “한반도, 경쟁의 거대한 체스판… 북-러 조약은 초조감의 산물”

현인택 이사장(이하 현)=북-러 조약으로 두 나라가 밀착하고 있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쓴 ‘거대한 체스판(The Grand Chessboard)’이라는 책 제목이 떠올랐다. 한반도가 이 ‘거대한 체스판’에서 지정학적 경쟁의 거대한 체스판이 된 듯하다. 우리로서는 달갑지 않지만 이번 북-러 조약은 탈냉전 이후의 지정학적 경쟁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다.

유성옥 이사장(이하 유)=러시아와 북한은 자기들이 볼 때 소위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질서의 제재를 받고 있으니 이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북-러 조약 서문에 “패권주의 기도와 일극 세계질서를 강요하려는 책동…”이라며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다극 체제로 바꾸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거대한 체스판을 흔들기 위한 ‘악마의 거래’라고 생각한다.

김병연 석좌교수(이하 김)=1
960년대에 태어난 저 같은 세대가 이런 거대한 체스판을 마주한 적이 있을까. 지난해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수출한 것은 멀리 있는 먹구름 같았는데, 몇 개월 만에 한반도에 ‘폭우’로 변해 다가왔다.

● 다차원적 신냉전… 中의 긴장완화 역할 주문해야

현=문제는 신냉전이 구조화, 공고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이 아니라 다면적이고 다차원적인 성격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이 과연 어떻게 할 것이냐’를 두고 전문가들의 의견도 갈린다.

유=오늘은 6·25전쟁 발발 74주년이다. 지금 미중 간 전략 대결의 와중에 북-러 밀착으로 한반도에서 신냉전의 입구가 만들어지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패권적 야망을 갖고 있다. 그래서 신냉전의 축에서 중국의 움직임이 매우 중요하다. 중국은 국제 공급망에 깊이 관여돼 있고 미국과 서방이 제재를 가하면 버티기 힘든 구조다. 따라서 북-러 설득보다 중국을 압박하고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전략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김=중국은 새로운 판을 짜기보다는 국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심을 갖고 있다. 중국은 국면 전환보다는 긴장 고조를 막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 다층적 신냉전이라면 중국은 북-러 밀착을 우려할 것이다. 중국이 긴장 완화의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 “옛 소련의 향수와 집착이 파괴할 러시아 미래”

현=중국의 움직임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의미가 크다. 한중 ‘2+2 회담’(외교안보대화)은 조그마한 시그널이다. 지금 결정적 역할을 하기엔 제한적이나 우리가 잘 끌고 나가면 전체적으로 순화가 가능하다. 미중 경쟁 구도 고착화 때문에 어렵다. 우리는 경제는 중국과, 안보는 미국과 협조해야 하는 것이 거대한 체스판의 딜레마 상황이다.

유=푸틴의 행보를 야만이라고 보고 싶다. 러시아 국민도 민주주의의 맛을 봤으니 북한처럼 통제하고 억압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푸틴이 전쟁에서 실패하거나 경제가 더 어려워지면 내부적으로 저항하는 세력이 나올 것이다. 야망과 팽창주의는 푸틴의 정치적 생명을 단축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김=러시아 경제력은 세계 10위권이나 푸틴과 러시아 국민 모두 인식의 오류를 안고 있다. 과거 패권국 중 하나였지만 미래가 점점 불안해지고 있는데,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저는 ‘과거가 미래를 파괴했다’고 본다. 옛 소련의 향수와 집착이 미래를 파괴해 더 빨리 추락하는 나라로 만들 것이다. 이는 미래 세대에 대한 가혹한 형벌이 될 것이다.

● “북-러 밀착은 중장기적인 김정은의 도박”

김병연 서울대 석좌교수 “중장기적인 김정은의 큰 도박… 北 주민 생활고 개선엔 의문”

현=우-러 전쟁도 북-러 조약도 일종의 ‘자기 파괴적’ 시도다. 북한과 러시아 양국의 절박감과 초조감에서 나온 산물이다. 그 결과는 양국뿐만 아니라 지역적, 세계적 안보 지형에 긍정적이지 않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금 대단한 정신승리 상태에 있을 것이다. 전략적 측면에서 북한은 단기적으로 주도권을 잡은 모양새다. 정상 국가가 아니니 정신승리 상태에서 무리한 체제 선전 시도를 할 것이다. 북한 체제는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까.

유=북한은 초지일관 세습 체제와 3대 혁명역량 강화를 강조했다. 그중 하나인 ‘남조선 기지’(한국)에서의 역량은 강화됐다고 생각할 것이다. 다만 ‘내부 기지’인 북한의 경제가 어려우니 사회적 불만과 혼란이 확산되고 있다. 당장은 러시아로부터 쌀(식량)과 에너지를 지원받아 숨통이 트이겠지만 중장기적으로 북한 내부를 더 어렵게 만들 것이다.

김=김정은은 푸틴이 평양으로 오는 걸 보고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의 ‘하노이 노딜’ 트라우마를 극복했을 것 같다. 하지만 스포츠 경기에서 이긴다 해도 며칠 가지 않는다. 내 월급, 실업 여부가 더 중요하다. 위신 세운 것은 좋으나 생활 개선이 안 되면 원점으로 갈 것이다. 북-러 거래가 사라지면 외환 보유액이 급속히 사라지니 북한 주민의 실제 생활고 개선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북-러 밀착은 중장기적으로 김정은의 큰 도박이자 모험이다.

● 체스판에 끼어든 北 NLL 도발 우려

현=약소국이 강대국의 큰 게임에 끼어들어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다. 김정은이 핵 문제로 미국과 협상하려다 실패했는데, 이번에는 또 다른 강대국 러시아와 체스 게임을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면 양국 밀월은 지속되겠지만 러시아의 체력도 고갈되고 있다. 머지않아 종전 상황이 오면 북한 경제에 영향을 곧바로 줄 것이다. 북한의 도발 징후들이 계속 있기 때문에 앞으로 북한이 남북 관계에서 서툰 짓을 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유=하노이 노딜은 김정은 대외정책의 중요 터닝포인트(전환점)였다. 이번에 (북-러 조약으로) 핵·경제 병진 노선이 가능해진 북한이 승리에 도취돼 대남 도발 수준을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은의 대남 정책이 훨씬 더 강경하고 무모해지리라 본다. 예측하기 어려운 회색지대 및 사이버 해킹 등 도발로 혼란을 조장할 것이다. 노동당중앙전원회의에서 북-러 조약을 승인하고 이어 헌법 개정을 할 것이다. 김정은이 새로운 해상 국경선을 만들라고 지시했으니, 북방한계선(NLL) 도발로 무력 충돌 가능성이 높다.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김=푸틴의 출구 전략은 자기들이 승리했다고 하면서 휴전 또는 종전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김정은이 러-우 전쟁 종료 전까지는 도발을 극대화시킬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다만 전쟁 가능성을 계속 띄워 남한의 포탄이 우크라이나로 못 가게 도와줄 것이다. 진짜 위험한 순간은 이러한 시도가 허사가 될 때, 즉 전쟁이 빨리 끝나고 푸틴이 김정은을 팽(烹) 시킬 때다.

● 北 핵실험 강행 땐 중국 압박해야

현=러시아에 포탄을 제공한 북한의 무기고가 비어 있으면 남북 간 군사 충돌도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할 것이다. 미국의 진보적 학자들이 ‘김정은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나’라는 글을 썼다. 결론은 북한이 전쟁을 준비했다는 것인데,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 논리는 전쟁을 막기 위해 미국 정부가 빨리 북한과 핵 군축 회담을 하라는 것인데, 그러면 우리는 방관자 신세가 된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재진입 기술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첨단 기술 등을 푸틴이 다 줄 것인지에 대해선 회의적으로 생각한다. 마지막은 7차 핵실험이다. 북한은 뭔가 과시해야 하는 나라이니, 만약 위성 발사에 실패하면 11월 미 대선 전후 핵실험이 유력하다.

유=
북한은 전면전 수행 능력이 없다. 포탄 탄약고는 비어 장기전을 치를 기반이 없다. 방공망이 없는데 이건 축구로 치면 공격수만 있고 수비수가 없는 꼴이다. 우리가 드론을 침투시키면 방어하지 못한다. 그래서 북한이 군사정찰 위성에 총력을 쏟고 있는 것이다. 또 핵추진잠수함으로 미 본토까지 잠행해 다탄두핵미사일(MIRVs)로 공격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가 이런 기술을 다 주지는 않을 것이다. 줄 것처럼 하면서 자기 영향권에 가둘 것이다. 손자병법의 우직지계(迂直之計), 즉 둘러가는 것인데, 북한을 묶어두기 위해서라도 원하는 건 다 주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만약 7차 핵실험을 강행하면 한미일은 중국을 확실히 압박할 수 있을 것이다.

● “안보 상황 급변, ‘한시적’ 핵무장 논의해야”

유성옥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사장 “北 변화시키고 대북억지력 유지 위해 ‘한시적 핵무장’ 정책으로 대응해야”

현=스웨덴 싱크탱크 스톡홀름 국제평화문제연구소(SIPRI)는 얼마 전 북한 핵이 30∼50기에 이른다고 했다. 많게는 20기가 더 있다고도 한다. 북한이 남북 관계를 완전히 끊고 적대적 관계를 선언한 만큼 북핵 위협은 현실화됐다. 북한이 ICBM에 매달리는 것은 미국을 겁박하기 위한 것인데, 미국을 묶어두고 남북 관계를 마음대로 하려는 것이다. 미 의회에서 전술핵무기 재배치 언급도 나오고,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도 그런 보고서를 냈다고 들었다.

김=대북정책에도 복합성이 필요하다. 국방 외교 등의 분야별 복합적 생각이 필요하다. 남북 관계는 핵무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북-중-러 밀착에 대비해 아시아판 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필요하다. 러시아가 레드라인을 넘는 군사기술을 제공한다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보내고, 동시에 한일, 한미 안보 협력과 레버리지를 키우는 방안도 생각해 봐야 한다.

유=북한은 2022년 9월 이른바 ‘핵무력정책법’을 만들었다. 북한 판단에 따라 핵 선제 공격도 한다는 것이다. 현재 한반도의 판이 완전히 바뀌었다. 안보는 1%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이다. 한반도 안보 상황이 급변했기 때문에 자체 핵무장 정책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당장 한미 관계를 파탄시켜 가면서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핵 자강력 추진 선언 자체가 미국을 움직일 것이다. 우리가 핵무기를 가지려는 순간 중국이 태클을 걸 것이지만, 이는 중국의 긍정적인 역할을 끌어낼 수 있다. 이를 위해 우리 내부적으로 국가 안보의 목표와 대안을 두고 컨센서스를 이루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 정치권이 국가적 위기에 초당적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

● 냉철한 북핵 대응 전략 지혜 모아야

현=북한의 핵 위협을 핵으로 억제하는 팽팽한 긴장 상태가 유지되면 불안한 평화가 지속될 것이다. 저는 체제 통합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본다. 한반도 전체를 생각하면 북핵을 이 상태로 끌고 가서 되겠느냐는 질문에 도달한다. 북한 정권 교체로 불안한 평화를 해결할 수 있을까.

김=독재자의 가장 큰 걱정은 내부다. 우리가 북한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어졌지만, 북한 주민이나 권력층 내부에 정확한 사실을 알려주는 것은 계속해야 한다. 우리 메시지는 중장기적으로 남북이 같이 공동 번영의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핵이 없어져야 한다는 것을 북한 주민에게 반드시 알려야 한다.

유=우리가 핵 균형을 가지면 북핵 위력은 없어진다. 그렇다고 핵무장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한시적인 핵무장이어야 한다. 북한이 비핵화하는 순간 우리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현=우리는 지금 매우 엄중한 상황에 직면했다. 냉철한 재평가를 바탕으로 정교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크게 보면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미래를 잘 대비하는 국가만이 살아남고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리=윤융근 화정평화재단·21세기 평화연구소 기자 yuny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