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해킹/문호진, 단요 지음/504쪽·2만3000원·창비
3년 전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선 철학 전공자들마저 난색을 표할 만큼 어려워 논란이 된 문제가 등장했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의 미학과 관련된 지문을 읽고 푸는 문제였다. 그런데 정답률은 수험생의 절반에 가까운 45%에 육박했다. 정반합 등 헤겔 철학의 핵심을 몰라도, 심지어 지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훈련된 기술을 적절히 활용만 하면 문제를 맞힐 수 있게 된 수능의 현실을 보여준 것이다.
저자들은 현재의 수능이 출제 원리나 정답을 찍는 기술 등이 유출된 ‘해킹’ 사태라고 진단한다. 해킹에는 드라마에 나오는 입시 브로커나 뒷거래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패턴 파악에 재능 있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최근 수년간 수능 및 모의고사 기출문제를 들여다보면 그만이다. 사교육계의 유명 강사들의 능력이 바로 이런 것이다.
수능 제도가 어떻게 변질돼 왔는지 추적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저자들은 현직 의사와 SF 소설가지만 수능 사설모의고사 출제 경험이 있는 등 사교육 시장의 현장을 오랫동안 지켜봐 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