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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자영업 실패 ‘수업료’ 내고 배운 것들[정경아의 퇴직생활백서]

입력 | 2024-06-30 15:05:00

일러스트레이션 갈승은 atg1012@donga.com


퇴직자들은 왜 자영업에 뛰어들까. 그 세계가 험난하다는 것을 모르는바 아닐 텐데. 어쩌면 몇 가지 사실들만 미리 알았더라도 쉽사리 결심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두어 달 전 집 근처에 새로운 가게가 생겼다. 인적 드문 곳이라 공사할 때부터 심히 걱정되었다. 오래 비어있던 자리에 뭐가 들어올까 궁금했는데 다름 아닌 베이커리였다. 중년을 바라보는 사장님의 인상이 참 좋았다. 처음에는 호기심에서, 나중에는 맛있어서, 나는 그 매장의 단골이 되었다.

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빵 매대의 모습이 바뀌어 갔다. 다양한 종류로 그득하게 채워졌던 오픈 초와 달리 제품의 가짓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사장님의 얼굴에서도 그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갈 때마다 한산하게 느껴져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며칠 전에 사장님이 내게 먼저 말을 걸었다. “저희 내일까지만 영업해요.” 짐작은 했지만 시기가 예상보다 빨랐다. “아주 다르네요” 힘없는 사장님 목소리를 들으니 뭐든 돕고 싶었다. 하지만 평소보다 많은 빵을 사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사장님의 말이 머리를 맴돌았다. 나 역시 퇴직 후 자영업에서 실패했던 적이 있어 무엇이 다르다는 것인지 알 것 같았다. 돌이켜 보면, 내가 힘겨웠던 이유도 3가지를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첫째, 오픈하고 나서야 보이는 것이 있었다. 사장님은 주변에 빵집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고 했다. 곳곳의 카페도 자신의 경쟁 상대였다. 당연히 사전에 시장조사를 마쳤지만, 당시에는 발견하지 못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점포를 열고 동네를 찬찬히 둘러보자 그제야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나도 사장님처럼 뒤늦게 파악한 사실이 있다. 바로 시장의 변화였다. 내가 차린 사업장은 면접학원이었는데 트렌드가 온라인으로 급물살을 타는 중이었다. 회사 다닐 때 대면으로 사람을 뽑아봤던 경험만 있어 교육도 무조건 오프라인으로 이루어지는 줄 알았다. 마침 코로나라 기업 채용 자체가 줄어든 점도 예측하지 못한 장애물이었다. 가까스로 알아냈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둘째, 자영업과 회사가 필요로 하는 자질, 역량은 서로 달랐다. 사장님은 이전에 다른 제과점에서 제빵사로 일했다고 한다. 인정을 받았던 터라 빵 만드는 기술만큼은 자신 있었다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맛은 정말 기가 막혔다. 그렇지만 계산하려면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구매할 빵을 계산대 옆에 놔둔 채 사장님이 일손을 멈추고 나오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바쁜 사장님에게는 잠시일지 몰라도 계산을 기다리는 손님에겐 긴 시간이었다.

내가 사업을 시작하고 한계를 느꼈던 부분은 홍보였다. 회사에서 상품 개발 업무를 주로 했지만, 판매가 어렵지는 않았다. 늘 비어있는 강의장을 보며 그 시절 성과는 나의 공이 아니라 마케팅팀 덕분이란 것을 깨달았다. 즉, 내게는 자영업을 할만한 능력이 없었다. 분업화된 회사에서 수십 년을 근무한 탓에 회사가 바라는 일부 영역에만 특화돼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일을 해도 속도가 나지 않았고 전문성도 떨어졌다.

셋째 자영업은 시작하기보다 중간에 그만두는 게 더욱 어려웠다. 빵집 사장님은 장사를 접기로는 했으나 앞으로가 더 큰 일이라고 했다. 대출을 받았는데 영업을 중단하면 대출금부터 갚아야 한다며 울상이 되었다. 당장 기계를 사겠다는 사람도 없고 자칫 철거비까지 나갈까 봐 걱정이었다.

내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고심 끝에 문을 닫기로 마음먹었지만, 뒤이어 처리할 사안들이 매우 많았다. 영업장부터가 문제였다. 건물주에게 계약만료 전 나가게 되었다고 어렵사리 얘기하니 딱 한 마디만 했다. “알았어요” 건물주는 전혀 급하지 않은 듯 보였다. 다른 세입자가 들어올 때까지 매달 빠져나가는 임대료와 관리비에 나의 속만 타들어 갔다. 모든 폐업 절차를 마치는 데 걸린 날들은 오픈 준비에 들어간 나날보다 훨씬 길었다.

하루가 멀다고 힘겨운 자영업자에 관한 기사가 쏟아진다. 이런 분위기에서도 퇴직자들이 자영업을 할 수밖에 없는 속사정이 있다. 돈은 필요한데 자신을 불러주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나 또한 숱한 시행착오 끝에 스스로 마련한 자리가 자영업 사장이었지만, 철저한 준비 없이 시작한 자영업은 몇 년 치 생활비만 고스란히 날리게 했다. 24시간 메여 있는 것, 예산을 뛰어넘는 각종 고지서 등 초보 사장을 눈물 나게 하는 일은 넘쳐났다.

자영업 실패는 비단 경제적 영향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나도 심리적으로 심한 후유증을 겪었다. 파장은 온 가족에게 미친다. 퇴직 후 자영업, 오래 고민하고 따져도 절대 늦지 않다. 최대한 신중한 자세를 가지길 바란다.




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